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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수 Jan 25. 2023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심리학자

심리선생님 만나는 날!

글 내용에 포함되는 모든 사례는 새롭게 구성하고 재가공된 사례입니다. 상담자는 반드시 상담 윤리를 준수하고, 비밀보장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종종 병동 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주된 내용은 “정신병동 무섭지 않으냐”, “입원해야 할 것 같은데 강압적일까 봐 두렵다”, “그 안에 있으면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 공격적인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냐?” 이 정도가 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할 때 외래 검사실보다 병동에 올라가서 평가하는 걸 더 좋아했다.

그리고 병동은 병원을 포함하여 그냥 이 사회 내에서 손꼽는 안전한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보호병동(구 폐쇄병동)은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욱더 두려움을 주는 형태로 미디어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사실 분리되어 있기에 몸과 마음이 더 안전한 곳인데. 

 

어떠한 존재가(사건이든, 물건이든, 경험이든) 나를 옭아매고 삶을 위협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그런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곳은 안전지대이고.


보호병동은 자유의 박탈을 지향하지 않는다. 

안전지대를 지향한다. 









정신과 병동은 둘로 나뉜다. 일반병동과 보호병동. 


일반병동은 말 그대로 개방되어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흔한 입원실이다. 


보호병동, 여기가 우리 흔히 알고 있는 정신과 병동이다. 모든 병원의 구조를 알지는 못하지만(조금씩은 다른 걸로 안다) 내가 일했던 병원의 경우 병동은 단단한 철문으로 막혀 있고, 이 문이 열릴 일은 거의 없었다. 병동으로의 출입은 간호실에 난 작은 문을 통해 이루어졌으므로, 반드시 간호실을 거쳐야 하는 구조였다. 


처음 입원할 때 간호실에서 반입금지물품을 걷고, 보호자가 가지고 가기도 한다. 보호병동에는 펜이나 칼, 끈, 휴대폰 등등 여러 물건이 반입이 안 된다. 거꾸로 며칠 이상의 숙박이니 꼭 있어야 하는 물건도 있지만.. 


위험한 물건이 없거니와, 위험이 있을 땐 대처도 빠르다. 자해나 타해로부터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말하는 건 이 이유에서다.


사실 자해, 자살 방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이게 가능한 도구를 싹 치우도록 보호자 및 본인에게 교육하는데... 가정 내에서는 이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게다가 약도 제시간에 맞춰서 복용할 수 있다. 


병동에는 간호사 선생님들도 상시 근무하시지만, 보호사님들도 항상 근무하시면서 상황 파악을 하신다. 공격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경우라면 바로 응대가 되고, 통제가 안 되는 경우라면 강박 격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강박의 이유에 대해서 환자분께 잘 설명을 해 드리시더라. 


전에 환자분께서 '보호병동의 유일한 단점은 돈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공감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숙제 돈.. 











나도 심리평가를 할 때 간호실을 거쳐서(늘 교대 근무로 고생하고 계신 간호사 선생님들과 병원의 처우나 현실에 대한(...) 스몰톡을 나누기도 한 뒤) 검사실로 진입했다. 그리고 검사를 받을 환자분을 만나러 간다. 


휴식 시간에는 복도에서 tv를 보시는 분들도 있고, 싸이클로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도 계셨고, 친해진 분들끼리 스몰톡도 하고, 게임도 한다. 아니면 그냥 본인 침대에서 책 보는 분도 계시고, 시간 활용은 다 다르게 하셨다. 요즘은 노래방이 인기라고 들었다. 


춤 잘 추는 분이 계실 때면 다 같이 즐거워서 좋은 것 같다. 연습하는 것만 보고도 다들 와~~~ 하면서 응원하고, 나도 감탄을 하기도 했다. 


환자분들은 서로서로 힘든 마음 다독이며 격려도 해 주시고 그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신다. 


병동에는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이 많다. 운동도 운동이고, 미술치료나 음악치료 선생님들도 들어와서 프로그램하시고, 여러 가지 스케줄이 돌아간다. 스케줄 중인 분을 모셔와서 검사를 하게 되기도 한다. 


대체로는 심심하실 때 잘 맞춰서 가면, 새로운 활동인 심리검사를 좋아해 주셨다. 물론 초반엔 좋아하시지만, 같이 주고받고 몇 시간을 앉아서 문제 풀고 그림 그리고 하다 보면 대부분 괴로워하셨고.


뭐, 나라도 괴로울 듯. 중요한 검사이긴 하지만 재미는 없다.


그 괴로운 검사를 하러 온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본인 간식을 나눠주시기도 하고, 여러 번 보면 반가워해주신다. 평가를 하는 입장이고 일하면서 내부에서 취식하지 못한다고 드시라고 돌려 드리면, 서운해하시기도 하고 그랬다. 그 또한 이해가 갔다. 


검사하다가 교수님 회진 도는 시간 되면 잠깐 다녀오시기도 하고. 

전공의 선생님이랑도 상담하고, 심리 선생님이랑도 하니까 좋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도 많았다. 


이쯤 되면 다들 동일하게 느끼시리라. 그냥 그곳도 작은 사회다. 다양한 나이대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물론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곳이니 캠프라고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병동을 떠나고 나서는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니 좀 지루하긴 했어도, 병동에서 보낸 시간이 휴식처럼 편안하고 좋았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셨다. 








병동에서 만났던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시도로 입원하셨던 중년의 여성분이었다. 


나는 심리검사를 하며 그분의 내적, 외적인 역사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 발전해 버린 하나의 의무감을 만났다. 본래 내 것이 아닌 의무감의 무게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게 되면서, 책무감이 날 선 비난의 칼날이 되어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고통과 역동이 잘 전달되도록 보고서를 쓰려고 애썼는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도, 결국 어디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도 전달하려 노력했다. 


검사 중, 그분은 예전부터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하셨었다. 나도 진심으로, 치료를 통해 그분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실행할 있는 힘이 생기실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분이 퇴원 후, 본인을 누르던 타인이 씌워둔 덫을 벗고 실제로 카페를 잘 운영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다는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병동에서의 이 모든 시간이 

'나로부터, 타인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스스로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마음이 찌르르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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