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e Nov 16. 2022

온전히 당신에게

Infant Jesus Church

돌이켜보니 나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상 속 문득 생각날 때마다 반짝 기도를 하는 편이다. 감사한 일이나 뭔가 긴장되는 순간엔 짧게나마 화살기도를 올려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긴 이동시간이나 여유시간이 생겼을 땐  왼손에 묵주반지를 매만지며 5단이라도 기도를 바치곤 한다. 고요한 신앙생활 속 그래도 가장 바람직한 습관 중에 하나인데 묵주기도는 내 안에 나를 붙드는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될 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성모님의 돗단배 위로 


10월은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묵주기도의 성월이다. 가을이 오고 성전 뒤뜰에 오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이 은총을 핑계삼아 성물방에서 예쁜 묵주를 사곤 했었다. 스리랑카에 있으니 계절감각이 무뎌져서일까 가을이  것도 깜빡 잊고 살고 있었다. 바쁜 업무와 우기를 핑계로 정말 오랜만에 성당에 왔는데 교회안팤이 온통 푸르르게 물들어 있다. 쉽게   없는 스리랑카 가톨릭 교회기가 도심 한 가운데 나부끼고 파아란 만국기가 성전 가득 매웠다


특별한 축일인지 옆에 앉은 신자분께 물어봤더니 이번 주가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주간이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신다. 한 달 내내 이렇게 기념한다고 하는데 같은 성모성월을 지내는 랑카 교회는 역시 그 존재감이 남다르다. 한국에 있었으면  그저 의례적으로 지냈을 교회 전례와 성월의 의미를 매달 새로운 의식과 시선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동안 해오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또한 완전히 다르게 진행되는 랑카식 예식은 모태신앙인 나에게도 신비로움과 경이감을 선물한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와 매년 왜 10월에 묵주기도의 성월을 보내는지 자세히 알아보았다. 16세기 이슬람 제국이 로마를 침공했을 때 연합군은 묵주기도를 드린 다음에 전쟁터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는데 당시 비오 5세 교황이 이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제정했다고 한다. 이후 1883년 레오 13세 교황은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 있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공표하였고 특히 전세계의 모두가 ‘세계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지향으로 함께 기도를 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필요한 스리랑카엔 유난히 푸른색 희망을 빛을 가득 담아 성모님께 기도를 올린다. 미사가 열리는 중인데도 성전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유난히 분주한 모습이다. 성전 한켠엔 화려한 꽃 화관 속에 둘러싸인 성모상이 있었는데 신자들은 그 곁에서 묵주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묵주기도가  글을 모르는 신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시편을 읽는 대신 '주님의 기도'를 곡식이나 작은 돌을 줄에 150개 엮어 만들어 하나씩 짚어갔던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어쩐지 그런 간절함이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온전히 당신에게 


콜롬보 도시 중심에 있는 아기 예수님의 성당은 그동안 자주 다니던 성당은 아니었다. 살고 있는 동네와 멀기도 하고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차를 타고 지나만 다녔는데 언제나 성당 중심의 청동 아기 예수상이 항상 궁금했었다. 화려한 성모성월의 축제를 맞아 온 성당을 찬찬히 올려다보니 아기 예수님의 화려한 대관식 외투 그리고 왕관으로 체코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을 청동으로 형성화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살 정도의 아이의 모습인 성상은 왼손에 십자가가 달린 지구의를 들고 오른손은 축복을 내리듯 들고 있다. 


미사가 이미 집전되고 있어 들어가진 못하고 성전 주변을 뱅글뱅글 돌아보니 오른편 경당엔 밴드부로 보이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고, 성극을 준비하는 의상을 입은 아이들도 마당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맞아 치워 지는 큰 행사를 준비 중이었는데 그에 앞서 성대하게 미사가 집전되고 있던 것이었다.옥빛으로 가득한 성전을 가득 채운 사람들 속 오늘은 신부님까지도 하늘색 제의를 입고 계신다! 묵주기도의 성월을 온 몸으로 알리듯 신자들의 손에는 각기 각색의 묵주가 놓여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언제나처럼 일상 속에서 축제와 같은 마음으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반복적이고 단순한 기도 속에 머무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잔잔한 울림이 전해진다. 알알이 묵주를 매만지며 온전히 당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니 몇 해전 우연히 휴가길에 마주했던 제주의 작은 성당이 떠오른다.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우리 가족은 일년에 한번 국내로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그 길에 우연히 만났던 성당이었다. 저녁시간 늦게 도착한 미사였지만 자비의 희년을 맞아 순례지 전대사 성당으로 지정된 서귀포 성당은 반짝이는 자태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새하얀 자태의 눈이부신 성모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함께 기도를 드렸던 순간은 나의 영혼에 온기로 남아있다. 

어쩌면 언젠가 성가정을 가질 수 있기를 작은 소망으로 간직하고 있는 건 사랑하는 가족과 이렇게 노래하듯 기도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함께하는 미사 덕분일 것이다. 길 위에서 하느님의 집을 찾고 이렇게 머물러 갈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온전히 당신에게 머물 수 있도록 교회가 선물해준 성월과 전력들을 더 아끼고 가까이 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하나의 뿌리를 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새롭게 신비를 느낄 수 있음에 기뻐하며.

이전 17화 말씀이 타오르는 마음에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