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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n 23. 2023

일어나 가자. 함께

Our Lady Of Guadalupe Church_자양동 성당

트링코말리에서 함께했던 세 개의 성당이 있다. 초입에 있어 도착하자마자 발길을 옮겼던 St. Mary 주교좌 대성당. 청량한 에메랄드 빛깔로 반짝였지만 북동부주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성전은 시에스타처럼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이토록 먼 트링코를 다시 온 이유였던 St. Joseph Church. 너른 품속에 가장 오래 머무르며 생명의 온기를 내 안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 콜롬보로 돌아가는 길. 해안가에 자리한 돌무덤과 같은 성당을 발견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서 살짝 고민 했지만 모든 여행길에서 마주하는 성당은 이제 한줄기 햇살과 바람처럼 자연스럽다.   

다시 세워지는 성전 


성당에 들어서려 중앙 게이트를 살포시 밀었는데 문이 잠겨있다. 오늘도 잠시 닫는 시간에 잘못 온 건가 싶어 문 좀 열어달라고 안절부절못하는데 동행이 옆 게이트에 연결되어 있던 줄을 잡아당기니 빼꼼 문이 열린다. 그렇게 머쓱하게 들어서니 사실 성당이 문을 닫은 것은 맞았다. 성당 건물 노후화로 인한 전면 보수 중으로 성전 내부 시설들은 대부분 헐어져 있다. 돔 부분을 지탱하기 위한 철근들이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지만 그중에 몇 안 남은 성상과 예수님 앞에 기도를 하고 계신 형제님이 계신다. 천정이 뚫려있어 제대 뒤로는 비바람을 그대로 맞은 감실 그리고 열두 제자 청동화가 추상화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당은 1959년 트링코말리 교구 사제인 Jhon Peter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다. 2004년 쓰나미 이후 한차례 재보수되었고 새롭게 탄생한 성당은 2006년 10월엔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과달루페의 성모 성당인 만큼 대성전 뒤로 성모님을 위해 따로 작은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작은 경당 제대엔 왼쪽 과달루페 성모발현의 주요 인물인 후안 디에고가 오른편엔 성모님이 오른편에 모셔져 있다. 작지만 별처럼 빛나는 이야기가 피어날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공간은 바닷바람에 낡아진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고 아늑하다.

성전 곳곳엔 가난한 이의 아버지 성빈첸시오의 뜻을 간직하고 실천한 흔적이 가득 남아있다. 우선 들어서면서부터 2014년 트링코말리 성 빈첸시오회 90주년을 축복하고 기념한 성인상을 가장 먼저 만난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포근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성 빈첸시오 성인은 일생동안 가난한 이를 섬기며 교회 내에 봉사가 체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씨앗을 뿌려주셨다. 천상의 축복이 모두 내려앉은 것 같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고립되고 낙후된 환경 속에서 가난을 짊어지고 있는 이곳 교우들에게 성인의 뜻이 얼마나 오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일어나 가자 


한국에도 이렇게 가톨릭 교회 최초 발현인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을 축복하고 성 빈첸시오회의 뜻을 섬기는 특별한 성당이 있다. 1531년 멕시코에 과달루페 성모님이 다섯 번이나 발현하시면서 발현 장소에 대성전이 건립되었고 이후 멕시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가 창립되었다. 선교회 신학교에서 배출한 사제들이 전 세계에 선교사로 파견을 나가게 되는데 1961년 2명의 사제를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50년간 신앙의 역사를 함께해 오고 있다. 그중 서울대교구 자양동 성당은 성당 설립부터 지금까지 과달루페 선교회에서 본당 전교를 위임받아 사목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뚝섬유원지에서 주택가로 내려오다 보면 커다란 예수님의 뒷모습 만으로도 성당을 한눈에 찾을 수 있다. 성전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예수님의 돌무덤 형상화한 듯한 제대 뒤 타원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신기하게도 과달루페 성모성당과 많이 닮아있었다. 놀랍도록 한국어가 능숙한 주임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드리고 나니 이곳에 온전히 자리 잡은 모습의 사제에게서 '파견'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매 주일 미사를 드리고 성당 문을 나서면 우리는 세상에 파견된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내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삶. 먼 타지에서 온 사제들의 기쁨이 넘치는 표정에서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매 주일 미사를 드리고 성당 문을 나서면 우리는 세상에 파견된다.


나의 파견지인 스리랑카에서 과연 얼마나 진실하게 마음을 나누며  신앙 안에 발맞춰 걷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아직 힘은 미약하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여정을 차곡히 기록하는 것도 그 일부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성당보수가 끝나고 언젠가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땐 나의 신앙도 조금 더 단단해져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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