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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n 11. 2023

기도가 닿는 곳엔   

St. Mary Church_낙성대동 성당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때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는 성당이다. 일명 성세권이라고 해야 하나? 주말아침 게으름을 깨워야 하는 만큼 걸어갈 수 있어야 하고, 가는 길이 아름답다면 금상 첨화이다. 사실 랑카에서 처음 집을 구할 때도 가까운 성당부터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이동 통제령이 반복되면서 한참 동안이나 평화방송 TV 매일미사를 봐야 했지만 온라인 미사가 익숙해질 때쯤 우연히 한 성당이 삶 속에 찾아들었다. 청아한 종소리에 이끌리듯 들어선 성당은 운명처럼 그렇게 나의 본당이 되었다. 

성당 가는 길 


사실 스리랑카도 한국처럼 스스로 본당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살고 있는 주소지를 기준으로 교적이 부여되고 태어나면 Book of Family에 등록된다. 따로 문의를 하진 않아서 외국인도 같을진 모르지만 어쩐지 랑카에 사는 동안은 이곳에 속하고 싶었다. 거리는 도보로 40분 정도로 사실 꽤 멀지만 한낮의 태양을 피해 천천히 걷다 보면 익숙한 듯 새로움이 더해진다. 콜롬보 대학 캠퍼스를 둘러 대학생인척 여유도 부려보고, 골목길마다 만나는 생명체들과 인사도 나누다 보면 멀리 성모님이 보이고 한 블록만 따라 들어오면 성당 도착이다.

사실 성당이 큰길이 아닌 작은 주택가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익숙한 본당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별처럼 많은 여느 성모마리아 성당 중 하나이지만 St. Mary Church, Bambalapitiya는 콜롬보 대교구에서 오래된 본당 중 하나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 1908년에 성전 건축이 시작되어 1927년 도서관 포함해 완공되면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그 역사적인 시간이 성당 얼굴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두 개의 탑 가운데에는 주보성인인 성모마리아 그리고 그를 보좌하듯 성 데레사와 성 안토니오 성인이 나란히 자리한다. 


나의 성전은 기도하는 사람의 집 
My house is the house of the prayer 

성전 밖에서 보면 탑과 기둥으로 층이 나눠져 있지만 내부는 성가대 석이 열린 구조로 지어져 있어 공간 자체가 넓고 웅장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기도하는 공간임을 성전에 모든 것들이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성가책, 미사지향 접수대, 2차 봉헌금 봉투까지 빼곡히 정리되어 있는데 주말 어디 놀러 갔다 급하게 찾아 들어간 어느 동네 성당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평화신문과 주보 중간 그 어딘가의 역할을 하는 듯한 소식지 Messenger 도 한켠에 준비되어 있다. 다행히 이곳에선 대부분의 미사가 영어로 이뤄지고 있기에 항상 편한 마음으로 성당을 찾을 수 있다. 

언제라도 기도할 수 있는 집 


수많은 본당을 스쳐 지나갔지만 사실 나의 본당이나 할 정도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을 한 기억은 많지 않다. 명동성당에서 솔봉이 주일학교,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등의 활동을 한 경험은 있지만 본당과는 별개로 한 활동이었다. 본당이라면 매 주일 빠지지 않고 미사참례 열심히 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지쳤던 학생 때 잠시 쉬며 숨을 고를 자리 한 켠을 내어준 낙성대동성당은 여전히 마음의 본당으로 남아있다. 여기가 성당인가? 당혹감을 가지고 쭈볏쭈볏 들어서던 그날 수녀님께선 온 세상이 다 환해지는 듯한 햇살 같은 미소로 맞아주며 온기 가득한 차 한잔을 내어 주셨다. 

주변에 일반 교우들도 많지만 대학 사목도 함께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오면 특히나 마음을 쓰시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고민거리였지만 수녀님은 당시엔 너무 중요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들어주셨다. 그날 처음으로 성전에서 고요 속에 기도하는 법을 배웠는데 아직도 마음이 소란스러울 땐 심호흡을 하며 그때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는다. 아마도 코 끝에 잔잔히 퍼지던 옅은 나무향, 소박하지만 단단함이 감돌던 성전의 분위기가 안도감으로 기억되기 때문인 것 같다. 벚꽃이 세상을 가득 수놓았던 어느 봄날 다시 찾았던 성전은 여전히 정겹고 포근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나의 일부가 담겨있는 본당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St. Mary 성당도 신자들에게 많은 터전을 내어준다. 지역 신자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성전 뒤편에는 스포츠 홀이 있다. 누구든지 뜨거운 태양을 피해 각종 실내 스포츠 등을 즐길 수 있는데 내부에서는 신나게 농구를 즐기는 활기 넘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은 때론 더운 날씨를 피하려, 마음속 이야기들을 기도 속에 털어놓으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러 본당을 찾는다. 그저 의무와 책임이 아닌 일상 속에 숨 쉬듯 찾아들고 나의 일부를 새겨 넣는 신앙의 공간. 나에게도 St. Mary Church는 랑카에서 매주 주일의 시작이자 가는 길마저 선물이었던 또 하나의 집이 되었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할 수 있도록 품을 내어주는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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