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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l 19. 2023

함께 갈까요, 우리

순례길은 계속됩니다

스리랑카는 오랜 불교 국가입니다. 2000만 인구 중 70%에 달하는 싱할라 민족이 주로 불교 신자이고, 어디서든 사찰로 가기 위해 새하얀 옷과 꽃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스리랑카로 떠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는 각오가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워낙 심각한 상황이었고, 최대한 내가 마주한 나라의 종교와 문화를 충분히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리랑카 정부에 의해 임의로 배정되는 나의 첫 격리지는 스리랑카 가톨릭의 심장 니곰보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로마라 불리는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스리랑카를 보았습니다.


첫 해에는 팬데믹 그리고 이어진 국가위기로 이동조차 어려운 시기였지만 일 년에 두 번 부활과 성탄에 니곰보를 다시 찾아 뜨거운 신앙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지도를 펴고 최북단 도시 자프나까지 연결된 '가톨릭벨트'를 건너, 내륙 정글 속에 숨겨진 신앙의 증거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동부 트링코말리를 지나 최남단 마타라까지 섬 전체를 누비며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느새 발걸음이 닿는 모든 여정이 곧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열강 수탈의 흔적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역경을 딛고 척박한 토양에 단단히 뿌리내린 이들의 신앙을 가까이 본다면 조금은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상치도 못했던 이 순례길에서 저는 귀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우선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성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입니다. 열두 사도들과 주보성인 외에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성인들의 생애와 삶의 깊이를 더 많이 알아가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워낙 살아 있는 듯한 성상을 자주 접하다 보니, 그저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닌 어느새 가깝고 친근한 스승님들이 생긴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신앙심을 가진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부족한 제 신앙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온 마음을 다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들을 내어놓을 줄 아는 마음. 바다처럼 투명하고 하늘처럼 청명 합니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이 모든 여정을 완성하고 기록할 수 있었던 건 함께한 동행들의 배려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나의 친구들은, 긴 여행길 뜨거운 땡볕 밑에도 궂은 날씨에도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처음 수줍게 이런 기획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누구보다 공감하며 들어주었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요. 이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성당만 보면 제 생각이 난다는 친구들. 이렇게 소중한 인연만큼 값진 선물이 또 있을까요?  맑은 아이의 눈망울 속 시린듯 아린 물결이 일렁이는 스리랑카가 벌써 그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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