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대한 두려움
사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불완전한 완벽주의자'라고도 칭한다. 새롭고 낯선 것들을 동경하지만 미지의 환경과 자극을 내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오랜 탐색이 필요한 편이다. 때론 나를 진취적이고 도전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스스로 충분한 검증과 준비가 끝냈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아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맡겨도 척척 잘 해내는 멀티 플레이어라기보다는, 맡긴 바 소임은 철저하게 잘 해내는 범생이 재질 (일상 속 작은 일탈을 꿈꾸는)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도록 주어진 범위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또 하나의 큰 자아가 함께 공존하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물음표가 많았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궁금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접 가서 만나볼 수 있는 방법들을 탐구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업은 자연스레 안정된 바운더리와 틀에서 벗어나 지도를 펴고 세계의 주류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개발도상국을 따라 걷는 길에 다다랐다.
물론 국제기구라는 큰 배에 승선한 지금, 체계화된 구조와 전문성에 기반하여 조금 더 수월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개발협력 지형과 다이내믹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 차별성 그리고 패러다임을 찾는 일이 나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찾아 두드리고, 시도하고, 탐험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근거가 충분치 않지만 일단 먼저 부딪쳐 봐야 하는 일들을 접할 때마다 신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무엇이 나를 두려움으로 이끄는 걸까. 가장 크게 직면한 문제는 원초적이지만 어쩌면 당연하게 초래할 수밖에 없는 '실수'에 관한 것이다. 나는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다. 누군가에게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타인에게 약점을 내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자주 듣고 자라왔다. 아마도 아빠의 성향을 많이 닮은 내가 세상에 상처 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두른 언어적 갑옷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때론 내 존재의 가치를 시험받고, 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공포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줄여보고 특히 중대한 실수는 막기 위해서 정말 성실하게 대비를 할 뿐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면 겪게 되는 시행착오 그리고 위험요소로 온전히 실수를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 부분도 다루어 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길 위에서, 잠재된 실수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를 감수해 내기보다 자주 머뭇거리는 편이다. 다시 돌다리를 두들기고, 다른 사람이 먼저 지나가길 기다려보며, 먼저 앞장서서 나아가길 주저한다. 의학적인 질병 코드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병을 혹시나병 (What if 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잘하고 싶어서, 틀리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마음 때문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경직된다는 것, 유연하지 않다는 것,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233p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인생은 무결점 할 수 없고 때론 아프지만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변명을 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보고 싶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회피 기제를 작동시켰다. 때론 무모하게 시도하다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들을 보며 " 거봐... 안전지대에 있길 잘했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랬다가도 언제까지 준비운동만 하며 출발선에서 서있어야 하는지 회의감도 든다. 지킬 앤 하이드도 아닌데 "누가 내가 실수하는 것을 세고 있겠어?"라고 하다가도 타인의 삶에 이러쿵 저러쿵 숙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또다시 평판에 연연하는 나를 발견한다.
"실수는 시작이기도 해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어쩌면 실수는 나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가 아니라, 실수를 하는 주체인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실수는 나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결국 실수를 하는 나도 나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애써 감출 순 있어도 나에게 부끄러움이 수치가 된다면 이는 결국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자리 잡는다. 내 안에 아직 비워진 공백이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실수를 만들 수 있다.인생은 결코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고 때론 실수가 가져온 실패의 여정이 나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 데려다 놓기도 한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을 찬찬히 돌이켜 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그것이 이 세상의 끝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완벽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나의 빈 공백에 두려움을 색칠하진 말아야겠다. 그럴수록 타자의 시선이 아닌 무의식 속 나 자신을 만나야 한다. 미지의 길은 언제나 거기에 있고 그 길이 꽃길이 아닐 수도, 어쩌면 실수로 한참을 되돌아 나올 수도 있다. 때론 예상치도 못했던 또 다른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어려움을 예단하고 주저하기에 앞서 이 길을 선택한 나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 나의 모든 변명은 외부적인 요소에 있었지만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이끄는 내 목소리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 때 실수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