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e Aug 11. 2024

기다리는 중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두려움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까지 잘 준비했으니 이제 나를 믿고 가자는 생각만 했다."

올림픽 대한민국 13번째 금맥을 터트린 어린 선수의 말은 진중한 듯 단단하다.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며 묵묵히 지켜낸 기다림의 시간. 그 혹독한 시간을 수동이 아닌 능동으로 만든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이름.  그 금빛 영광이 비추는 시간은 해사한 선수의 모습만큼이나 빛이 난다.


삶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인 것 같다. 매 순간 우리는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시간을 위해 준비하며 기다린다. 사업제안서를 제출하고 기다리기. 시험 결과를 기다리기...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항상 기다림 너머에 있다. 그 시작은 때론 희망으로 반짝이기도 하지만, 기약 없는 막연함 속 인고의 과정을 지속한다는 것은 실로 고통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다림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조급해지기도 때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 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항상 벅찬 숙제와 같았다. 목표 지향적인 나에겐 더욱 그랬다.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해 내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나는 자기 계발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시도한다. 원하는 결과지는 대부분 손에 쥐었지만 어째서인지 매 성장의 마디마디가 서로 연결되지 못했다. 자격증은 있지만 지식은 내면화되지 못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전문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기다림은 결과를 위해 가까스로 감내하며 견디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8년 전 발레를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목표는 1년 안에 토슈즈 신기였다. 일주일 5번 수업을 듣고, 7kg를 감량하여 토슈즈에 올라선 순간 더 이상 그 고통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한 장의 인증 사진으로 끝맺음된 그 시간 속엔 지금은 아는 호흡 하며 근육 쓰기, 근육의 힘을 컨트롤하며 바른 자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없었다. 결국 열심히 했지만 그 순간에 현존하지 못한 것이다.


기다림은 가장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솔직히 기다림은 여전히 반갑지 않다. 어딘가에 빨리 이르고 싶은 조급함 때론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이 나를 지치게 한다. 이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요행이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유혹이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을. 매일 맞닥뜨리는 나의 한계 그리고 의지를 다독이며 충실하게 이 시간을 살아낼 뿐이다. 힘들 땐 한 템포 쉬어가기도 하며 이 기다림의 시간이 몸에 새겨질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한다. 또 하루 지속한 하루를 칭찬하며 오늘도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참 아이러니한일인데 기다림이 나에게 이토록 어려워서 일까... 반대로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는 일에서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예상치도 못했는데 공항에 나를 마중나온 친구를 마주할 때,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마주할때.. 내가 가장 안전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선택에 더딘걸음으로 먼 여정을 떠나곤 하는 나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기에 오늘도 중심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향한 그리고 타인을 향한 기다림은 그래서 힘이 있다. 


언젠가 다이어리 첫 장에 적힌 꿈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기다림의 시간 나는 최선의 시간을 보내왔다고, 이제 나의 시간이 왔으니 나를 믿고 세상에 내맡겨 보자고 꼭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지탱해 주는 것처럼 누군가의 삶의 여정과 선택을 묵묵히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기다림의 과정은 언제나 고단했으나 나에게 햇살과 자양분도 함께 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의 현재에 몰입하다 보니 때론 기다리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나의 꿈에 함께 당도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낙과- 정호승
슬픔이 택배로 왔다







이전 06화 아름다운 실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