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e Aug 31. 2024

당신과 나의 사이

관계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 나에게 당신에게 가장 좋은 관계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깊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정서적 거리,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태도,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 온전히 공감하는 위로의 합이라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어놓은 너무 높은 기대치를 이미 알고 있어서일까 실상 나는 인간관계에 많은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아니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태생이 외로움을 타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다. 나는 대부분 혼자 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산책하기. 서점가기. 쇼핑하기. 여행 가기. 누군가와 함께이면 함께인 대로 그만의 즐거움이 있지만 혼자 해도 그대로 좋다. 때론 홀로 사색하면서 머릿속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며 털어내기도 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관심사들을 더 깊이 탐독하기도 한다. 사실 이렇기에 사람들은 막상 친해지고 나면  재미있지만 처음엔 더 다가가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귀띔해 주기도 한다.


늘 그랬다. 나는 친구들과 있을 때도 일정한 거리감을 느꼈다. 흐트러지지 않아서 같이 있어도 완전히 섞이지 못했다. 그 이격은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자청한 것일 터였다.

나는 태어나기를 단정하고, 외따롭고, 고요한 것에 끌리는 성정으로 태어난 모양이었다. 물고기였다면 나는 아마도 맑고 서늘한 물에서 산다는 열목어나 산천어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나를 후배들이 친밀하게 대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자신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내보여도 좋을 만큼 내가 막역하고 도량 넓은 선배는 아니었으리라…
- 관계의 물리학 194p


내가 인간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거짓된 명제이다. 이는 분명 범위는 좁지만 내 안에 깊게 머무르는 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가정과 무수한 타인의 자극에 무감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실상 내겐 어떤 존재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삶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때론 나의 세상을 깨우고 단단히 지탱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믿음이 기반이 되는 관계가 주는 깊은 유대감은 어떤 어려움에도 나를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입장과 자리가 있다. 어느 입장은 세상 밖으로 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독립적인 세상과 그 내면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전자로서도 또 나의 공간에선 후자의 입장으로도 존재한다. 다양성을 위해 각기 다른 입장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회가 요구하는 표준 사회성 지표들은 너무 일방적이었다. 친한 친구가 몇 명인지. 모임은 몇 개나 참여하고 자주 나가는지. 마치 수치로 증명해야 원활한 정상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 관계는 잘 해내야 하는 또 다른 과제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속도와 형태도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정형화된 함의만이 주류가 되고 그 외에 다른 모습은 아웃사이더가 되는 흐름도 때론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했다. 최근엔  '피상적인 관계 대신 깊이 있는 소수의 관계'가 대세라고 하지만 나의 모양을 그저 흘러가는 획일적인 트렌드 속에 하나로 두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불완전하지만 누군가를 존중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 싶었다.


당장 닿지는 않지만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관계에 포함되지 않을까. 서둘러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알려줄 때까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일까. 누구나 불완전하고 불안한 존재라는 걸 알기에 상대방의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어 줄 수 있다.
- 관계의 물리학 322p


관계는 여전히 어려운 수수께끼 같지만 난 그래도 관계 속 '사이'가 주는 오아시스 같은 안정감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아빠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CD와 LP를 정말 광적으로 수집하시는데, 엄마는 언제나 아빠의 창의성과 영감은 음악 속에서 나온다며 그 우주를 온전히 존중해 주셨다. 아빠는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기라도 하면 아이같이 눈을 반짝이며 엄마에게 제일 먼저 설명을 시작하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무리 피곤해도 언제나 그 에너지에 감응해 주셨다. 또 미술을 좋아하는 엄마가 어느 날 흘려지나 가듯 말했던 작가의 도록을 거실탁자에 산타처럼 가만히 놓아두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는 정적이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이 묻어나는 사랑의 미학을 배웠다.  

동등하고 존중의 거리를 품고 있는 존재들이 서로의 거리를 가질 때
그것을 우주라고 한다.

부모님은 성격도 취향도 참 다르지만 서로가 고유하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거리를 품어 가며 서로에게 향응하는 관계를 보여주셨다.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거리를 주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믿음의 궤도 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엔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들이 존재하고 서로가 확장된 세상에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인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렵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다. 나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적당하고 알맞은 거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 거리를 준다는 것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서로에게 마음의 곡률반경과 자유로운 선택의 권한을 늘려준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거리를 주면 관계의 너비와 둘레가 확장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생동하는 자유의 거리를 내주겠다. 당신의 원심력이 커질수록 나의 구심력도 커진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어 그리움의 힘은 믿음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안심해도 좋다.
-관계의 물리학 84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