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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30. 2020

제가 소인가요? 일만 하게.

음메음메. 고삐는 쥐꼬리만한 월급.

  

  회사에 다니다 보면 겪게 되는 불변의 법칙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치사하고 더러운 법칙 중 하나'일은 잘하는 사람에게만 계속 떨어진다는 것'이다. 회사에 가면 모두들 쉬는 시간에도 늘 혼자만 바빠 보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불분명한 특수한 직군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앞서 말한 법칙의 당사자일 확률이 높다.


  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구조다. 아웃풋이 좋으니,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회사차원에서는 당연히 그들에게 일을 더 맡기는 것이 최의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일을 시키는 만큼 그들에게 플러스 알파의 무언가가 붙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할 때형평성 측면에서 반드시 문제가 나타난다.


  대학 졸업 후 공백기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작은 연구소에서 기간제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연구소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일에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주야분주하던 연구원님이 계셨는데, 내막을 알고 보니 그분께서 이 연구소의 대다수 연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연구원님은 손이 빨랐고, 통성이 좋았다. 그를 기반시시각각달라지는 민감한 현안도 늘 센스 있게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 강점은 독이 든 부메랑이 되어 연구원님께 돌아오곤 했다. 부메랑에 든 독은 대체로 '새로운 일'이 었는데, 일을 잘하다 보니 업무가 할당되는 비율이 다른 사람 대비 현저히 높았다.


  연구소 직원들은 대부분 담당분야가 다르긴 하였지만, 로 간 협업할 수 있는 공통분야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원님의 업무를 덜어주려 하는 선의의 인물은 없었다. 그녀의 됨됨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고, 대다수의 직원들이 그녀를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저 다들 지나가며 번지르르한 빈말을 늘어놓기만 했다.


  ㅇㅇ씨가 있어서 우리 연구소가 돌아가.
 ㅇㅇ님 이따가 커피 한 잔?
  ㅇㅇ씨 스트레스받는 일 있어? 새치 생겼네


 

tvn 드라마 미생

 


 오히려 그녀를 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이도 드물게 있었다. 그녀는 상사에게 업무 과다 문제로 이미 몇 차례 면담을 진행했지만, 처우를 개선해 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상사라는 사람 아랫사람의 고충에도 담배나 태우며 보고서를 재촉하는 자였으니, 더 이상 말하면 입만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능력 있는 연구원이었음에도 일을 떠미루는 환경 탓 불변의 법칙에 휘말린 케이스였다.


  그녀가 있던 공간을 지나칠 때마다 보았던 장면들은 어제 일처럼 아직 눈에 선하다. 업무시간 중 그녀의 옆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몰래 모니터로 연예인 가십거리를 찾아보는 옆자리 동료들의 모습이다. 게 중 대부분 자신에게 배분되어야 할 일이 그녀에게 주어진 지 알았음에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일의 욕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녀의 노고를 당연시하는 광경은 제삼자의 입장에 보기에 좋지만 않았다.


  내가 기간제 인턴이 끝나던 날까 연구소는 첫날과 달라진 것이 요만큼도 없었다. 몇 년 후 당시 연구소를 다니던 어떤 이와 우연히 재회했던 날 그에게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상사와 한바탕을 한 후 연구소를 나갔다고 했다. 그가 말하기로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상사에게 불만을 제기했던 날 상사의 대답이 그녀의 퇴사를 종용했다고 했다.



  "그러게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적당히 하지."



  그녀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연구소를 관두었고 다른 곳에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되었다고 하였다. 이후 그녀가 몸담고 있었던 조직은 어영부영 버티다가, 다른 부서로 흡수되며 막을 내렸다고 했다.



  나만 좋자고 일을 열심히 한 게 아닌데, 혼자만 바보가 되가고 있는 거라면 그만 멈춰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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