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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Dec 20. 2020

나는 축하해줄 수 없는 이야기

같이 버티자 해놓고 너만 떠나기야?

  

마음먹고 샀지만 몇 번 입어본 적 없던 정장을 꺼내 입었다. 약국에 들려 청심환을 사 먹고 도착한 장소에는 똑같은 차림을 한 사람들이 가득이다. 누군가는 종이에 적힌 빼곡한 회사 이력을 달달 외우느라 정신이 없고, 건너편에 앉은 이는 자기소개 연습에 열중이. 각기 다른 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표는 로 다르지 않. 표는 서도 무척 려웠. 외부인 출입증 대신 자신의 이름 석자 회사 이름이 겨진 사원증을 목에 는 것.


  긴장된 분위기 속 권태로운 표정으로 면접자 명단을 체크하는 이가 시선에 들어. 그녀의 가슴팍에는 내 것과 다른 때깔 좋은 사원증이 번쩍거. 그녀는 당장 사원증을 벗어 버리고 싶은 눈치였으나, 그곳에서 그녀는 선망의 대상일 뿐이다.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단연코 그녀였으니까.




  관문을 뚫고, 회사에게 선택받은  망하 사원증을 손에 거머. 리고 회사의 문턱을 함께 넘은 우리는 '동기'라는 명목으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기 시작. 입사 초반 으쌰하며 뭉치던 분위기는 얼마 못가 소원해지만 회사 안에서 동기가 주는 안식은  비중이 다. 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몇 없는 사람이자 밑도 끝도 없는 상사 욕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재. 동기는 가뭄 속 단비다.


  물론 동기간 생길 수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의뭉스러운 시기 질투, 무리 속 은근한 따돌림 등의 문제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행운이 깃든 이들은 둘도 없는 단짝을 회사에서 만나기도 다.


  일과 후 언제든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나눌 수 있고, 늘 회사 메신저 채팅방 속 가장 윗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 각박한 회사생활 속 위안이 돼주고 선의의 경쟁자로서 나의 성장 원동력이 되기도 는 사람.


  늘 오늘 같기만 하면 좋겠지만, 건은 한 물가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너울 파도처럼 일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단짝이 돌연 퇴사를 선언다.





  퇴근길을 함께하며 내일 회사에서 보자 너는 돌연 회사를 그만둔다고 전해왔다. 내막을 들어보니 업계 최상위 회사에 지원을 었는데 운 좋게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남몰래 면접까지 봤던 것을 보면 너는 꽤 오래 준비를 해왔던 듯싶었다. 아무 귀띔도 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지레 서운한 감정부터 앞섰다.


  상기된 얼굴로 퇴사를 준비하는 네가 밉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평소 감정 기복이 없던 편이라 생각했는데, 의 퇴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맨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엔 그저 놀랐고, 시간이 지나선 서운했고, 마지막에 가서는 헛헛한 마음만 남았다.


  네가 회사를 떠나는 날은 기어코 다가왔다. 짐을 들어준답시고 굳이 네가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러 나섰다. 차에 짐을 싣고서 앞으로는 밖에서 보자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에야 너는 비로소 떠났다. 나 홀로 회사로 돌아오는 길, 네가 없다는 사실 매일 같이 다니던 회사가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이제 와 말하면 너의 퇴사 소식을 들었을 때 마냥 축하해줄 수 없었다. 비겁하게 너의 앞에서는 잘 되었다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나 역시 사람이었기에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될 네가 부러웠고, 한 편으로는 네가 없을 내가 걱정되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넋두리를 늘어놓고, 업무시간 몰래 잡담을 나누고, 같이 연차를 쌓아가던 네가 사라진다는 것은 게 제큰 상실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제는 회사 어디를 가던 너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고, 쉬는 시간 너와 커피타임을 가지던 시간에는 이제 나 홀로 앉아 책을 읽는다.


  같이 시작했지만 영원히 '같이'일 수는 없다. 결국 여느 선배들 말처럼 우리는 각기 맞는 길을 찾아 다시 뿔뿔이 흩어졌고, 우리는 각자 선택한 길 위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혼자'임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뿌리가 단단한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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