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너무 가기 싫은 날이 있다. 바깥은 아직깜깜하고 잠은 너무 부족하다. 그럼에도 나는 일어나야만 한다. 왜? 회사를 가야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회사와 계약된 몸이니까.
오랜만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 밑이 움푹 들어가 있는 모양이 달갑지 않았다.피부도 푸석해졌고, 무엇보다 매사에 의욕이 사라졌다. 새로운 곳에 가고 사람을 사귀는 일들이 지루해지고 귀찮아졌다. 그럴 시간에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잠에 취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변화는 직장인이 되고 만 1년도 되지 않아 나를 찾아왔다. 하루에 적게는 12시간, 많게는 16시간을 근무했으니 회사에서 살았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은 괴로웠고, 끝에 가서는 그렇게 싫던 아침마저 무감각해졌다.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나를 망치고 있는지, 회사가 나를 망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망가지고 있었다.
그날도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그 순간 문득 왜 내가 출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발 한 걸음 떼기를 그리 괴로워하면서 꾸역꾸역 출근을 해내고, 왜 매일 죽상으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지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처럼 모순인 일이 없었으나, 애당초 명쾌한 해답은 있었다.
'회사 관두면당장 월세는? 식비는? 대출은?'
'경력 단절인데, 이 취업난에 무슨 배짱으로?'
'부모님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만 안겨드리라고?'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할 보장은 있고?'
'당장이야 좋을 테지. 그런데 대체 뭐해먹고살라고?'
해답이 괜히 해답이 아니 듯 틀린 말은 단연 없었다. 그러나 혹시 내가 회사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했다. 사실은 핑계이면서 그럴듯한 해답으로 둔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달마다 주는 돈다발에 취해,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마음조차 접은 건 아닐까?
인생을 송두리 째 회사에 바치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꼬박꼬박 받는 월급이 주는 안식은 끊어내기 어려웠다. 타임머신도 없는 시대에 태어나 영원히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영화 인턴
시니어급 인사는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했었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그렇게 세월에 무뎌져 지내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게 되는 날이 있어. 그제야 내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을 덧없이 흘려보냈는지 알게 돼. 부디 나처럼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
회사를 관두면 안 되는 수십 가지 이유들을 모조리 상쇄시켜버릴 수 있는 것은 '도전'이었다. 현실적인 부문을 감안하면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도전이 내게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것은 전문직 시험이 될 수도 있고 귀농이 될 수도 있고 사업이 될 수도 있고 워홀이나 유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한 바를 실제 실천에 옮겼는지이다. 첫 발을 뗏다면 가히 20%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