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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 Jun 26. 2020

줄넘기

줄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은 줄넘기다. 하루에 1000개씩 꾸준히 하려고 한다. 왜 하필 줄넘기냐고요? 어디서든 줄만 있으면 할 수 있고, 개수를 늘리면 꽤 운동도 된답니다.

 줄넘기의 단점은 너무 많이 할 경우 무릎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콘크리트 같은 딱딱한 바닥이 아니라, 배드민턴 장의 고무바닥 같은 곳에서 줄넘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은 주로 집 근처의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곤 한다. 오후 5시 반쯤의 공원은 평화롭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전거를 타고 재잘거린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태양의 따가운 기세도 거의 수그러드는 참이다. 나는 테니스장 옆의 배드민턴 장 가장자리에서 줄넘기를 한다. 테니스장에서는 중년의 아저씨 둘이 느슨한 것 같기도 하면서 가끔은 팽팽하게 느껴지는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어느 쪽도 응원하지 않으면서 눈으로 공을 좇으며 줄넘기를 한다.

 1000개의 줄넘기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디선가 한 세트에 100개 이상하면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글을 읽고 나서, 난 한 세트에 100개씩 꼭 10세트를 하고 있다. 줄넘기 100개는 생각보다 금방 뛸 수 있다. 그래서 세트와 세트 사이 쉬는 시간이 운동하는 시간보다 평균적으로 더 길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뛰고 있기 때문에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낮게 뛰고, 착지할 때도 무릎을 살짝 굽힌다. 그렇게 700개쯤 뛰게 되면 등에 살짝 땀이 나려고 한다. 1000개를 다 뛸 무렵엔, 숨이 차오르고 운동을 조금 한 느낌이 든다.

 난 체격이 마른 편이고 원래 러닝도 자주 했었기 때문에 줄넘기 1000개를 뛰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다. 하지만 1000개라는 숫자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운동을 하고 나면 괜스레 조금은 대단한 것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1000번이라는 숫자를 붙이면 범상치 않아지는 것이다. 1000번의 절, 1000일의 기다림, 1000번의 슈팅. 이런 것들에 비하면 한 번 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 줄넘기를 1000개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숭고함, 대단함 이런 느낌들을 1000개의 줄넘기는 너무 손쉽게 얻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내 줄넘기의 브랜드는 김수열 줄넘기다. '이 줄넘기가 아니라면 줄넘기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구매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저 줄넘기를 사러 간 문구점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김수열이라는 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줄넘기를 판매하고 있으니 줄넘기의 대가쯤 되는 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좋은 줄넘기란 이런 것이다'에 대한 확실하고도 분명한 철학을 가지신 분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만한 줄넘기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수열 씨를 생각하면, 그의 줄넘기에 대한 굉장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가끔 그의 줄넘기에 대한 열정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어떤 열정이든 진실되고 진지한 열정은 부러움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운동을 하고 저녁밥을 먹으면 밥맛이 좋다. 밥맛이 좋다는 건 살 맛도 난다는 뜻인 것 같다. 사는 즐거움의 상당한 지분을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주장에 대한 확실하고도 직접적인 논거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줄넘기를 계속할 계획이다.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나의 무릎이 줄넘기에 의해 지나친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가끔은 무릎이 힘들면 힘들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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