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별난 몇몇 사람은 귀한 라디오를 어깨에 들쳐메고는 라디오 방송을 크게 틀고 연신 울려댔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이 되면서 일본과 식민지 주종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의 모든 독립운동도 막을 내릴 예정입니다. 일본의 히로히토 천황은‘전쟁으로 고생하는 자국민을 불쌍히 여겨 종전을 선언하게 됐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라디오 너머로 성우가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탑골공원 근처 인근으로 모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광복이 되었다며 쾌재를 불렀다. 온 경성이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가게로 돌아와 얼떨떨한 마음으로 영업준비를 서둘렀다. 이후 손님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광복에 대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며 흥분하는 것을 보니 과연 양조장 업자의 말이 참말이었다.
‘허, 그 양반 운 한번 억세게 좋구먼….’
다음날인 8월 16일은 광복의 물결이 더 강하게 번졌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광복에 대한 확신을 품었기 때문이다. 신태준이 주도한다던 만세운동은 광복이 되며 당연히 취소됐지만, 탑골공원은 이미 자발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아이고, 경사 났네. 경사 났어!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애어른 구분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광장과 공원으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들고 다니며 조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구호를 쉬지 않고 외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거대한 나팔을 일제히 부는 것만 같은 위용이 있었다. 오늘은 필시 장사가 잘될 것이 틀림없다. 이런 날은 원칙을 어기고 예외적으로 마감 시간을 넘기고 나서도 장사를 계속하고 싶었다. 장사하다 보면 종종 아무리 바빠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탑골공원은 만세 물결의 중심이 되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바탕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서로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벅차오르는 감동과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할 길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사람도 있었다.
말복(末伏)의 무더운 여름을 견뎌내고 가을보다 더 빨리 광복이 찾아왔다. 이것은 하늘이 주시는 선물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는 가게를 열기 위한 채비를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