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까 나리께 돈도 받아서 갔으니 저들도 이젠 엮이어서 아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무기는 뭐 사용하지 말라 어쩌라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그냥 무시하셔요.” 김향화가 일본 순사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음? 아까 내가 오기 전에 그 사람들이랑 얘기해서 무기는 안 쓰는 걸로 결론 났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자리에서 그렇게 들었고.”
“풉! 그거야 앞에서만 대충 장단 맞추어 준거지 어디 약조까지 해가며 지키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알겠다고만 하고 무기도 쓰셔요. 나리께서도 가만 보면 마음이 약하실 때가 있습니다. 무기를 쓴다고 한들 저들이 나리께 뭐 어쩌겠습니까. 하하!” 김향화는 이제는 아예 손사래를 쳐가면서 배가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뒤로 젖히며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졌으면 싶더라고요. 본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죠.” 별안간 그녀의 얼굴이 표독스러운 살쾡이처럼 변했다.
“배신에 크고 작음이 어딨습니까. 안 했으면 안 했지 하게 되면 다 똑같은 배신이지요. 어설픈 양심은 필요 없습니다. 저렇게 발버둥 쳐봐야 어디 독립이 된답니까? 저럴수록 본인들만 초라해질 뿐이지요. 그저 허허벌판에서 총이나 칼만 잡아대니 무식하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향화! 알고 보면 아주 사악하고 잔인한 면이 있어. 하하. 언니와 오라버니들을 그렇게 놀리면 쓰나? 내가 그래서 너를 이뻐하지. 요 귀여운 것!” 일본 순사는 김향화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기분 좋다는 듯 장난을 쳤다.
“아유! 나으리 여기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아까 오늘은 마님도 본국(本國)에 가셨다고 했고…. 댁으로 가서 얘기 좀 더 나눌까요? 호호.” 김향화가 일본 순사의 구레나룻 근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눈웃음을 쳤다.
“크크 좋아, 좋아! 오늘 내가 밤새도록 할 말이 아주 많아.” 일본 순사는 흡족하다는 듯이 웃으며 김향화의 옆구리를 감싸 안고 자기 쪽으로 바짝 당겼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고주망태가 되어 비틀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나는 가게의 빈자리 아무 곳이나 한군데 걸터앉아 소주를 따라 마셨다. 향긋한 소주 향이 입안을 풍성하게 감싸서 기분이 좋았다.
‘한데 술맛은 쓰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나는 마감 청소를 하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에게 술 권하는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