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요시! 그러니까 핵심은 ‘8월 16일에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한다’ 이 말이지?” 약간 취기가 오른 일본 순사는 임영신과 이규식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옆에 있는 김향화 씨가 우리 누이에게 그 말을 했다고 하니 의심스러우면 직접 물어보십시오. 저희도 그쪽을 통해 듣고 알게 된 거지 우리가 처음부터 직접 움직였던 게 아닙니다.” 이규식이 김향화를 턱짓하며 가리켰다.
“아 그렇지요!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너무 고민이 되어 영신 언니에게 털어놓았으니까요. 나리 떡갈비 좀 더 드셔요.” 김향화는 일본 순사에게 아첨을 떨며 앞접시에 떡갈비 조각을 놓았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진압을 하는 것은 좋지만 내부에서 의심을 사게 되면 지속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 인력은 확보하되 무기는 안 쓰는 방향으로 부탁드립니다. 무기는 그날 만세운동을 한다는 걸 알고 미리 주문을 넣어 둬야 확보가 되는 것이니까요. 무기를 쓰게 되면 크게 의심할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임영신의 표정은 평소와는 다르게 상당히 진중하고 비장했다.
그 뒤 넷은 이야기가 예상보다 잘 되었는지 언성을 높이거나 드잡이가 생기는 불상사 없이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날 계산은 김향화가 내겠다는 것을 극구 말리고 이규식이 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무언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넷은 가게를 나섰고 나는 그들이 머물렀던 탁자를 치웠다.
이각(二刻)하고도 더욱 시간이 지나고 미닫이문을 열고 새로 손님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의외였다.
그곳에는 김향화와 일본 순사가 서 있었다. 순간 놀라 동공이 커지고 말았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의연한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술집 주인장은 손님의 일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
다시 들어온 김향화의 손가락에는 샛노란 호박을 꽃 모양으로 깎아서 올려놓은 옥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게다가 속 고름에 매었는지 저고리 사이로 아까는 못 봤던 백옥으로 된 향갑노리개도 보였다. 그사이 어떻게 속 고름에 장식 노리개를 맸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에 얌전하던 김향화는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은지 들떠서 일본 순사에게 수다스럽게 말을 붙였다.
“나리, 그 사람들이랑 자리해주신 덕분에 제가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 덜었습니다. 감사해요!” 그녀는 일본 순사에게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한껏 교태를 부렸다.
“흐흐,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근데 여태는 나한테 혼자서 몰래 정보를 줬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왜 굳이 저것들을 끌어들인 거지? 시건방지게 식민지 것들이 요구나 하고 말이야. 퉤!” 그는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제비 꼬리 같은 콧수염을 매만지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뭐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어요. 그냥 쭉정이들 몇 명 연결해 놓아야 이해관계가 얽혀서 빠져나가기도 쉽고, 물타기도 용이하고 그렇지요. 호호. 남자면서도 제게 뻣뻣하게 구는 신태준도 보기 싫고요.”
“아하, 그렇구먼. 향화 요년! 아주 꾀도 많고 영리해서 보면 볼수록 물건이야. 하핫.” 일본 순사는 술도 올랐겠다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김향화의 엉덩이를 어린애 궁둥이 쓰다듬듯 툭툭 치며 칭찬을 해댔다.
“아이참 나리도! 부끄러워요.” 김향화는 흥이 한껏 오른 듯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평소에 입속의 혀처럼 굴며 구워 삶아놓으면 아주 하자는 대로 잘도 따라오더라고요. 깔깔. 그러다가 쓸모없어지면 팽(烹)하면 되지요. 토사구팽(兎死狗烹)! 까르르.” 일본 순사와 김향화는 신이 났는지 다정하게 얼굴을 마주 보며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폭소했다.
‘거참….’ 나는 그들이 주문한 안주와 술을 말없이 내어놓았다. 그리고선 손님이 빠진 다른 탁자의 접시와 술잔을 걷어와서 박박 문지르며 설거지를 했다.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인지 잘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