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한국형 긱이코노미, 재야 고수들의 시대가 온다.
취업도 창업도 아니면 나는 무엇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긱워커(Gig-worker)가 되었다. 긱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일자리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된 것이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위해 내가 찾은 대안은 긱이코노미였다. 긱이코노미란 기업 또는 사용자가 업무수요에 따라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 형태로 인력을 충원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일자리 형태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인터넷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디지털플랫폼에 접속하여 일감을 구하고 수익을 창출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고, 무자본 혹은 적은 자본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긱이코노미 영역으로 유입되고 있다. 최근 다양한 디지털플랫폼의 증가와 코로나19에 따른 급속한 비대면 업무양식에 따라 긱이코노미 시장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긱이코노미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슈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약 284조원이었던 긱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398조원으로 성장했고, 2023년에는 약 52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긱이코노미는 아직 대다수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설령 긱이코노미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긱워커를 배달, 택배 상하차와 같은 업무를 단기적 혹은 한시적으로 하는 비숙련노동자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백수입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는 취업하지 못하고 일정한 일도 없는 '잉여인간' 즈음으로 보는 측은한 시선들을 감내해내야 한다. 또, '긱워커'라는 단어에 대해 무작정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책 원고작업을 위해 내가 생각하기에 긱이코노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긱워커에 대해 막연하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긱워커라는 단어말고 다른 단어 없나요?' '긱워커보다는 프리랜서라고 표현해줄래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긱워커를 긱워커라 말하지 못하고, 1인 기업 혹은 프리랜서로 단어를 고쳐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긱이코노미 도입으로 인해 여러 부정적인 사회상이 드러나고 있다. 긱이코노미 회의론자들은 긱이코노미 종사자들은 실질적으로는 근로자이면서도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대표 긱이코노미 일자리 중 하나인 '쿠팡 플렉스(Coupang Flex)'의 사례를 살펴보면 긱워크(Gig-work)의 문제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쿠팡 플렉스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긱워커들이 택배를 배송하고 소득을 올리는 형태의 긱워크다. 쿠팡 측에서는 열심히만 하면 시간당 2만 5,000원까지 가능한 긱이코노미 일자리라 쿠팡 플렉스를 소개했지만, 이는 1시간에 34개 이상 택배를 배송완료했을 때, 즉 평균 100초에 하나씩 배송할 때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업무수준인 것이다. 실제 2022년 초에 쿠팡플렉스를 했던 지인은 새벽배달 기준 배달단가가 박스 1,000원, 비닐은 700원밖에 되지 않고, 유류비를 제외하면 실제로 최저시급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첫 배송 프로모션 10만 원의 추가적인 프로모션 행사가 없다면 쿠팡 플렉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러한 사례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인건비의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이 정규직 혹은 상시인력을 채용하지 않기 위해 생겨난 일자리 형태가 '긱이코노미'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자는 기업들이 상시고용에 따른 비용을 경감시키기 위해 '원하는 시간,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자유'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미끼로 근로자들을 불안정하고 질낮은 일자리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미국 노동장관을 지낸 UC버클리대 정책대학원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이러한 긱 이코노미를 '찌꺼기를 나누는 경제 형태'라고 칭하며긱 이코노미는 결국 큰 돈은 플랫폼기업에게로 가고, 노동자에게 찌꺼기와 같은 작은 임금만 돌아가는 경제 형태라고 비판한다. 한 언론사 역시 긱이코노미 형태의 일자리를 '녹아내리는 노동'의 단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볼모로 소득은 적고, 사용자의 요구사항에 따라 대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길어지는 근로시간 그리고 퇴직금과 같은 정당한 근로자의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는 일자리로 긱이코노미 일자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긱이코노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실제로 긱이코노미에 따른 여러 부작용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긱이코노미는 현재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 우리 일상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프리랜서/긱 이코노미 재능플랫폼 '크몽'에서는 디자인, IT 등 11여 개 영역, 500개 카테고리에서 25만 건 이상의 긱워커들이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길거리에는 자전거나 도보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는 배민커낵터 혹은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긱이코노미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함께 하고 있는 경제현상이 되었다.
나는 긱이코노미라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가치판단를 유보한 채, 새로운 일자리 흐름을 어떻게 활용해야 자동화, 기계화로 점철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자 한다. 현재진행중인 경기침체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꿈꾸는 양질의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에게 직무교육과 복지를 주면서 고용하겠다는 기업은 점점 더 희소해질 것이다. 변화무쌍한 비즈니스에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경력직 직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래 역군인 MZ세대는 어떠한가? 점점 많은 MZ세대들은 기존 일자리의 고정관점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왜 꼭 9시~6시까지 일해야 할까?', '왜 일하려면 지옥철(지옥+지하철)을 견뎌야만 할까?' '왜 직업은 꼭 하나만 가져야 하는가?', '꼭 사무실에서만 일해야 하는가? 해변에서 일할 수는 없을까?' 나는 긱 이코노미가 기업과 근로자들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만들어 낸 경제 트렌드라고 해석하고 싶다.
긱이코노미는 취업과 창업 사이의 중간지대를 담당하는 제 3의 일자리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긱이코노미는 정규직 중심의 취업형태의 일자리와 사업자등록이 필요한 창업의 특징을 동시에 지낸 일명 '짬뽕'형태의 일자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장기화된 불경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안정적인 삶의 상징이었던 정규직의 신화는 이미 무너져 내린 지 오래다. 언제까지 정부가 고용안정성과 높은 임금을 제공해주는 일자리를 창출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창업을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을 감내해야만 한다. 빌게이츠, 제프 베조스, 정주영, 이병철 회장과 같은 창업성공신화를 창업자들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지만, 장기불황으로 인해 대표들은 늘 사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취업과 창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일자리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취업도 창업도 아닌 제3의 일자리 영역인 긱이코노미로 진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긱이코노미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긱이코노미를 취업과 창업 사이의 중간지대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긱이코노미는 ‘잠정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긱워커는 긱이코노미라는 안정망 속에서 자신들의 재능과 능력을 실험하며 꿈과 적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한다. 특히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의 간섭과 비교로 성찰의 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 긱이코노미는 꿈의 실험실과도 같다. 이들 중 일부는 긱이코노미라는 요람을 거쳐 기존 일자리 시장에 편입하기도 하고 자유와 안정을 위한 제3의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나는 자유와 안정적인 삶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쟁이 '긱워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