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다정한 한 잔’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나는 핸드드립 커피의 다정함을 좋아한다.
미각이 예민하거나 커피의 맛을 잘 알아서 또는 어떤 ‘멋스러움’ 때문이라기보다 직접 한 알 한 알 정성 들여 고른 원두와 고심하여 로스팅하고 블랜딩 한 그 적절값에 들어간 수고스러움을 좋아한다.
맛에 기민하여 그 수고로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야 더 좋겠지만 커핑 연습 덕에 사소한 맛의 차이도 알아채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산미의 차이만 겨우 알아차리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굳이 더 비싸고 번거로운 핸드드립 커피를 선호하는 것은 그 한잔에 담긴 때때로 고집스러운 철학과 정성, 온전한 한잔을 기다리는 느릿함과 융숭한 대접의 다정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