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사람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그냥 나는 뭔가 재밌는 것을 하고 싶었다.
유치원생 때는 하루 종일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아나운서 흉내를 냈다.
초등학생 때는 반 아이들과 걸그룹을 형성해 노르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고
중학생 때는 그렇게 연습한 춤과 노래를 수련회 무대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동성애에 관련된 의뢰인을 전문으로 받는 변호사 이야기를 보았다.
그 후 막연히 나도 동성애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의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과학수사대를 꿈꾸기도 패션잡지 에디터를 꿈꾸기도 광고회사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 때까지 꿈은 대통령이기도 했다.
지금도 해보고 싶기는 하다. 재밌을 것 같아서.
태어나서부터라고 하면 조금 오버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무척이나 어린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그 하나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중에는 정말 재밌던 것들도 있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재밌었고, 글 쓰는 것도 재밌었고, 커피를 만드는 것도 좋았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꽤나 재밌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막혀버렸다.
분명 재밌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그래
그 한마디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슬펐다.
그럼 우리는 모두 언젠가부터는 늘 재미없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니까.
사는 게 다 그래
만약 그렇다면 창조주는 너무 무책임하다.
우리를 다 그런 삶을 살게 하려고 세상에 만들어내다니.
먹고 자고 싸고 지구를 망치는 일만 하는 존재들을 말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맞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거지-
재밌는 일들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을 뿐.
그럼에도 나는 계속 재밌는 것을 하고 싶다.
재밌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이런 마음조차도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재밌는 것을 하지 않으면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 게 들켜버리니까
나는 끝도 없이 재밌는 것을 하며 나를 포장하는 것이다.
이거 봐. 나 이렇게 재밌는 것을 해.
어때? 재밌지? 맞아 난 재밌어.
어느 쪽이 더 슬픈지 모르겠다.
앞의 이유로 재미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감추려 끝없이 재밌는 척 진짜 나는 모자이크 처리해버리는 것.
수업이 많은 꿈과 하고 싶던 일 사이.
최종적으로 나는 되어버렸다.
그저 재밌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재미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