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내게 남겨준 것들 - ②
새내기 시절의 나는 비주류였다. 스스로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청년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전공을 싫어하는 티가 너무 나는 사람이었다. 이미 전공은 정해졌으니 수업을 열심히 듣고 남는 시간에 연애도 하고 놀면 될텐데. 분명 나를 보는 동기들은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공과대학의 모든 학생들은 매년 ‘전공지도’라는 1학점짜리 강의를 수강한다. 실제 수업은 아니고, 배정된 교수님과 학기에 한 번 면담을 진행한 후 몇 명씩 조를 묶어 저녁 식사를 하면 학점으로 인정되는 아름다운 과목이다.
나의 첫 전공지도 시간은 1학년 2학기에 찾아왔다.
내심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학교 공부에 대한 실망감과 무기력함에 취해 무한한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로서는 강한 자극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부요리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며 교수님은 10명 남짓 되는 학생들 모두에게 희망하는 진로를 물으셨다. 돌이켜보면 건축/토목공학을 전공하는 새내기들 입에서 시공사나 건축설계사, 또는 교수로 나아가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지루할 정도로 당연했다. 그런 사고는 논리적이고 보편적이다 못해 당위성도 있다. 요즘 그렇게 각광받는 공무원이라는 단어조차 그 날은 구경도 못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과학 기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내뱉었을 땐 교수님도 제법 흥미로운 기색을 보이셨다.
정확하게는 기자가 되어 과학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뉴런에 저장된 지식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유익한 과학 이야기를 그저 흥미롭게 전달하고 싶었다. 식사 자리의 관심을 내게로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 날 내 입에서 나왔던 과학기자라는 단어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실현되었다.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렸던 막연한 꿈은 깎이고 깎여서 다른 형태로 변했지만 확실히 동기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업(業)을 갖게 되었다. 건축과 전혀 관련 없는 회사에서 교육 직무로 일을 하게 된 내 자신을 소개할 때면 오히려 긴 설명을 하기가 막막해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는 말로 급히 마무리 짓곤 한다.
회사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상황을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늘 마음이 가득차는 느낌이었다. 업무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전공을 하나의 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도움이 됐다.
전공에 능통하다는 것은 나만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한 곳에 몰두하지 않았던 나는 전문성을 조금 내려놓는 대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남겼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구분하고 객관화했다.
결론적으로 대학에 지불한 등록금은 낭비가 아니었다. 그 땐 비판적인 생각도 많았지만 대학은 나에게 그 돈을 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다만 전공과 관련이 없었을 뿐이다. 건축공학이라는 전공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그저 전공 밖에 있었을 뿐이다.
내게 꼭 맞는 옷이 아닌 것 같은데도 한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잠시 고개를 돌려봐도 좋다.
때로는 고민의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