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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by 꿈꾸는 momo

"엄마!"


놀랄 때마다 반사적으로 ‘엄마’라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언제라도 엄마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존재하는 걸까. 자다가 놀라 깼다. 머리에 뭐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게 느껴져 털어냈는데 내 두피를 꽉 물고 떨어졌다. 불을 켜 보니 지네였다. 시골에서만 겪을 법한 오싹하고 끔찍한 경험이었다.


옆에는 쌍둥이가 자고 있었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근처에 있던 책으로 지네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노래가 나오던 유아용 책이 박살 났다. 몇 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는 벌레를 싫어하는데. 박살 난 책과 지네의 최후를 보며 우린 허탈하게 웃었다.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존재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를 다시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첫째는 곰국에 밥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고, 짜장보다는 카레를 좋아한다. 둘째는 굽지 않고 촉촉한 식빵을 좋아하고, 양말 코를 앞으로 당겨 헐렁하게 만들어줘야 좋아한다. 셋째는 달콤하고 바삭한 것을 사랑하며, 코피가 날 땐 휴지로 막아주는 것보다 씻어주면 좋아한다. 남편은 아침에 내린 커피에 우유와 얼음을 넣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뭘 좋아할까. 네 명의 남자들은 단 한 명의 여자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있을까.


쉴 새 없이 가족들을 챙기고 집안을 정리하다 커피 한 잔을 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 끝에는 엄마가 떠오르곤 하는 거다. 엄마는 무얼 좋아했더라. 망설이는 생각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세 아들을 키우니 사람들은 "딸이 없어서 어쩌누." 한다. 딸이 없다는 것은 남자 냄새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남자의 언어에 외로운 것이기도 하고, 나의 갱년기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딸의 갱년기를 걱정하는 것은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이고, 쑥을 캐고 나물을 캐고 참기름을 짜 주는 이도 나의 엄마인 것을. 딸이 아니라 엄마가 없는 게 나는 더 슬플 것 같다.


봄이 되면 엄마는 봄나물을 뜯어 찬을 만들어주신다.

"이게 약이다."

귀한 흰 민들레로 담근 장아찌, 향이 가득한 두릅, 부드러운 참나물. 엄마가 가득 담아준 찬들을 펼칠 때마다 마음이 울렁거린다. 긴긴 겨울을 뚫고 나온 강인한 그 생명력이 곧 엄마 같다. 새순을 얻기 위해 여전히 찬 기운이 남아있는 봄의 대지를 서성거리는 엄마. 가시에 찔리고, 흙먼지에 손톱 밑이 새까매졌을 엄마.


이제 나는 더 이상 햄이나 소시지 반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이 되는 연둣빛 새순을 입안에 넣고 소처럼 천천히, 오래 씹는다. 향이 떠나지 않게. 엄마가 떠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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