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기억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먹는 것 앞에서였다. 점심 급식만 해도 그랬다. 시골학교의 조리사님은 언제나 어른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따로 만들어 대접에 수북이 담아주시곤 했다. 존대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가슴 뻐근한 일이었다.
교무실에서 전체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교무실 책상마다 붉게 익은 홍시가 접시에 담겨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초록 부직포를 깔고 유리를 덮은 책상이라 그런지 홍시의 붉은색이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두 손으로도 감싸야할 만큼 커다란 홍시였다. 흠도 없이 발갛게 투명한 홍시를 본 순간 나는 정말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주변에 아무리 감나무가 많아도 이런 홍시를 직접 먹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기쁨이 입안에 가득 찼다.
그때만 해도 회식이 잦았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좋았다. 잘 차려진 음식 앞에서 젓가락을 들 때마다 왜 그런지 자꾸 부모님 생각이 났다. 돼지고기 뒷다리살을 사시던 엄마가, 속과 껍질이 단박에 분리되는 큼직한 귤을 사시던 아빠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점포를 얻었다. 세 번째로 옮긴 가게였다.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의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엄마는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셨다. 내가 아침에 잠에서 깰 즈음이면 엄마는 나갈 채비를 끝낸 후였다. 어떨 땐 엄마 얼굴을 못 보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부엌에는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감자볶음이나 계란프라이, 분홍 소시지나 어묵조림 같은 반찬 한 가지와 김치 정도였다. 그날 아침상에 오른 반찬은 어김없이 도시락 반찬이기도 했다. 바쁜 엄마가 싸준 도시락엔 가끔 감자가 아삭아삭 덜 익어 있기도 했고, 달걀물을 입혀 부쳐낸 직사각형 햄은 한쪽 면이 거뭇거뭇 타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일미무침 사이로 작은 파리 한 마리가 형체도 모르게 끼어 있는 걸 보고 반찬뚜껑을 덮었다. 소풍 도시락으로 싸 주셨던 김밥이 제대로 썰려 있지 않아 몇 개 떼 내 먹다가 풀숲에 다 던져버리고 왔던 기억도 있다. 배고픔보다 부끄러움이 먼저였던 십 대였다. 하지만 그 투정을 엄마에게 대놓고 하지는 못했다. 엄마가 얼마나 부지런히 사는지 모르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우리 가족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세끼 밥 외에 간식거리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이었다. 과일을 사 먹는 건 사치였다. 엄마는 가을에 얻어온 떫은 감을 항아리 가득 초물에 담가 두었다가 겨울에 꺼냈다. 외풍 때문에 이불 밑에서만 뜨뜻한 방 안에서 우리는 포크만 들고 앉아 엄마가 깎아주는 감을 쳐다보았다. 그 감이 얼마나 말랑하고 달콤했는지 모른다. 요즘은 볼 수 없는 간식거리라 그 맛이 그립다. 어린 내 주먹만 한 감은 깎아서 4 등분하면 순식간에 없어졌다. 우리가 포크를 들고 달려드는 속도는 엄마가 깎는 속도보다 빨랐으니, 결국 엄마 입으로 직행하기는 어려웠다. 그때 내가 철이 좀 들었더라면, 엄마 입에다 먼저 쏙 넣어주었을 텐데 그런 기억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나도 애살스런 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회를 먹게 된 것도, 소고기가 맛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다 어른이 되고 나서다. 언젠가 이모네가 식당에서 사 준 회는 최악이었다. 무슨 맛으로 이런 질겅질겅 한 날것을 먹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오랫동안 퍽퍽한 소고기보다 대패 삼겹살이 맛있었다. TV에서나 봤던 노란 치즈를 우리 집 냉장고에서 봤을 때의 기쁨은 잠시, 난 처음 먹는 서울우유 치즈를 한 입 먹고 뱉어버렸다.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 엄마는 그런 내가 우스웠는지 한참 소리 내어 웃으셨다. 누군가 사다 준 건데 엄마도 못 먹겠더라며.
"뭐, 먹을래? 아빠가 오늘 맛있는 거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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