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렇게 생색을 내는 건데?

아들에게

by 줄리썸머

받으면 고마운 마음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으면 두배로 고맙다. 그럴 때는 말투와 표정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나는 내도 내도 그렇게 생색을 내는 두 남자와 함께 산다. 아주 작은 심부름을 하고도 생색을 내는 꼬마 오씨와 생일 선물을 사주고 1년 내내 누가 사줬지?를 외치는 커다란 오씨도 함께 산다.


왜 이렇게 생색을 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생색은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히 나설 수 있거나 자랑할 수 있는 체면이라고 하는데, 한 번도 기분 좋게 필요한 것을 사준 적이 없는 남편은 참 치사하게 굴다가 필요한 것을 사주고 그렇게 생색을 냈다. 잘 쓰고 있던 아이폰을 굳이 삼성 커플폰으로 바꾸자고 몇 달을 이야기해서 같이 갈아탔다가, 또 엘지로 바꿨다가 다시 아이폰을으로 바꾼다고 했더니 그렇게도 이해를 못했다. 급기야 고장 날 때까지 쓰다가 바꾸는데도 아이폰 하나 사주고 그렇게 오래 이야기했다. 내가 전화기를 만질 때마다 누가 사줬지? 했다. 그러면 당신이 사줘서 고맙지 하면 될 것을 또 그렇게 그 소리를 못했다.


말 안 하면 고마워할 텐데 왜 그리 생색을 내느냐고 투덜거렸다.


그때는 몰랐는데 살면서 오래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가 속 시원한 인정의 표현을 잘 못하고 살았나 싶다.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칭찬도 넘치게 하고 호응도 잘하면서 그렇게 집에 오면 인색했던 것 같다. 요리사 남편이 집에 와서 요리를 잘 안 하고, 개그맨 남편이 집에 오면 조용하다던 그런 것과 비슷한 걸까?


그게 뭐라고 더 격하게 고마워, 사랑해하면 될 것을 못하고 살았다 10년 동안이나. 그러니 두 남자가 그렇게 칭찬과 인정에 목말랐는지도 모른다. 칭찬받고 싶어서 고맙다는 애교를 듣고 싶어서 많이도 애를 썼나 싶다. 이제는 아주 조금씩 알겠다. 현명하게 구슬리는 말로 얼마든지 잘 요리할 수 있는 것이 남자들인데, 그걸 몰랐다. 내가 밀어내면 더 달라붙고, 내가 쓴소리 하면 더 더 요구하는 정에 굶주린 오 씨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그렇게 생색을 내는지 그러지 말라고 여러 번 아이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생색을 내고 있었다. 엄마니까 당연히 몸에 좋은 음식을 준비해서 맛있게 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되어 식사를 준비하는 일에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생색을 냈다. 삼시세끼 너무 힘들다는 둥, 왜 이렇게 끼니때가 빨리 돌아오느냐는 둥,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 안 되냐는 둥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생색의 일종이었는데, 문득 그런 엄마 아빠와 똑같이 준이도 생색을 내는 것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다가 나는 어떤 엄마인가 하는 생각에 머무른다. 어떠한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엄마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버릇없이 자라는 것이 싫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아이에게 은연중에 생색을 내며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았다.


닭꼬치가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 일정이 빡빡하니 네가 끼워서 만들어 주면 닭꼬치로 굽고 아니면 꼬치 없이 구워주겠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


조금 고민하더니 오 셰프님, 큰 맘먹었다는 듯이... 그래 엄마 내가 끼울게. 한다.

많이 커서 이렇게 요리도 잘하느냐면서 추켜세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나는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 엄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콕콕했다.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정성을 쏟아해주는 엄마이면 어떨까? 지치고 힘들어도 잘 먹는 아이의 모습에 배가 부른 그런 포근하고 인자한 엄마라면 말이다. 왜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요리가 부자연스럽고 나에게는 버거운 건지, 마음먹고 하면 금세 하면서도 왜 신나서 하기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맛있게 만들어준 닭꼬치를 구워 같이 아점을 먹으면서, 네가 먹는 다이어트 음식에는 고기 투성이네 하면서 둘이 웃었다. 살이 쪄서 건강식으로 먹자고 큰소리를 떵떵 치고 또 문득 바쁜 순간이 오면 간단하게 먹고 싶은 불량엄마인데도, 엄마가 해주는 것이면 뭐든 맛있다고 최고라고 해주는 과분한 아들과 살면서 그 생색쯤을 거뜬히 받아주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엄마부터 생색보단 조건 없는 마음으로 나누고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줄게. 아이는 엄마 아빠의 그림자를 보고 자란다는데 엄마가 엄마 자신을 돌아보는데 서툴렀어. 앞으로는 조건 없이, 어떠한 생색 없이 네가 먹고 싶다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노력을 다하는 엄마가 되도록 애써볼게. 맛없어도 잘 먹어줘서 고마워 아들. 닭꼬치 잘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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