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너 13일에 시간 되니?”
결혼할 때 나는 보통 사이즈의 냉장고만 샀다. 많은 친구들이 김치 냉장고를 함께 구입을 했는데, 워낙 바쁜 스케줄로 일하던 나와 남편, 우리는 많은 양의 식사를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요리를 많이 하지도 않으니 큰 냉장고나 김치 냉장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매년 김장을 할 때, 그러니까 한꺼번에 많은 김치를 가지고 왔을 때와 시원하게 맥주를 채워 넣고 싶을 때 그리고 명절에 많은 과일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는 이따금씩 김치 냉장고가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린 그런대로 김치 냉장고 없이 10년 잘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냉장고가 심상치 않다. 한 번은 냉장고 뒤편에 얼음이 얼어서 꽁꽁 얼음이 얼어붙었다. 얼어붙어 버린 얼음들을 치우고 무엇이 고장 났는지 as 기사를 불렀더니 다행히 메인보드가 고장 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약간의 비용을 치르고 고치고 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 이번엔 하부 수납장 뚜껑이 부러졌다. 남편은 조심해서 쓰자면서 냉장고 고장 날 때까지 잘 버텨보자 이야기한다. 매번 테트리스처럼 여기저기 소분해서 집어넣고 어떤 것들이 들어오고 나갔는지 체크하며 아무도 못 찾는 음식을 단번에 찾아내는 나의 능력 뒤엔 많은 수고로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하고 싶었을까? 4 도어 냉장고가 사고 싶었던 것은 아주 한참 전이지만, 뭐 그럭저럭 잘 살아왔으니까! 어쨌든 여전히 우리 집엔 아직 냉장고만 있다. 보통 사이즈!
얼마 전에 우연히 친정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냉장고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그동안 내가 지난 10년 동안 김치냉장고가 없다는 것이 너무 불편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었던 데다가, 많은 양의 식재료와 반찬들을 싸주실 때 냉장고에 넣을 곳이 없다고 했던 딸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 너 13일에 시간 되니? “ 엄마는 갑자기 2주 후 주말에 시간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 왜? 별일 없는데?” 하는 나에게 “ 응, 그냥! 비워둬. 알았자?” 하신다.
내 나이 열셋, 그러니까 엄마 나이 서른일곱, 그때부터 시작된 바깥일, 엄마는 그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금까지 일 하신다. 나이가 드신 이후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께 못 해 드린 효도를 다른 어려운 분들께 할 수 있어서 좋으시다면서 할머니들이 원하실 때면 그날이 언제이든 할머니분들을 도우러 나가신다. 월화수목금토일 엄마 얼굴을 보기 힘든 날이 많았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의 화장실 가기를 도우시고, 목욕을 도와주시고 나면 엄마도 몸살 난 듯 몸이 아프실 텐데도 일하는 것이 너무 즐거우시다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매번 손주 얼굴 볼 때마다 용돈을 주시고 시장에 가서 제철 식재료를 한가득 사다가 다 들고 오지도 못할 만큼의 반찬을 해서 딸을 부르신다.
그리고는 이렇게 지금도 일해서 자식들 위해 하나라도 해줄 수 있고, 나중에 자신의 노후에 병원비 걱정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일하는 것이 마냥 행복이라고 말하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한 시간에 몇 천 원 남짓 되는 최저비용으로 버는 월급을 또 차곡차곡 모아 목돈을 만드신 엄마, 이번에는 딸에게 냉장고를 사주신다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 알았지? 13일에 무조건 시간 비워둬!”
“ 왜 엄마? 무슨 일 있어?”
“ 너 냉장고 사, 아니면 김치냉장고 사던지!”
“ 엄마, 무슨 소리야?” “냉장고를 왜 사? ‘“ “그리고 엄마가 왜 내 냉장고를 사줘?”
“ 엄마가 사주지 누가 사줘! 그러니 아무 말 말고 그날 시간 비워놔 알았지?
그리고 어떤 것이 좋은지 맘에 드는 것도 골라두고!”
“엄마가 그때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네가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고 네가 벌어온 돈을 다 받아서 너를 그렇게 조금 주고, 고생을 시켰잖아. 엄마가 그때 왜 그렇게 쥐어짜고 살았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
“지금 엄마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러니까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좋은 걸로 사!
알았지? 엄마는 그날 시간 비워둔다!”
먼 거리도 걸어 다니며 돈을 모아서 우리 삼 남매 하고 싶다는 공부시켜주고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오시면서도 삼시세끼 이외에도 간식까지도 다 직접 만들어서 해주시던 엄마의 정성을 단 하루도 잊은 날이 없다.
장녀이기에 당연히 힘든 엄마를 도와야 했고, 받은 월급 고스란히 엄마에게 주고 나면 차비만 용돈으로 받아서 썼던 지난날, 동생 대학 학비에, 병원비에, 먹이고, 입히고 하시느라 어쩔 수 없이 쓰셨던 딸의 월급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셨었는지 엄마는 아직도 자나 깨나 지난날 자신이 못해주신 것만 떠오르시나 보다. 엄마 자신을 위해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말이다.
자식 셋 모두에게 못해준 것만 떠올라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요양보호사를 하시니 주변 할머니들의 생활을 보시면서 이다음에 자신이 더 나이 들고 병들면, 자식 셋 중 또 내가 제일 당신 곁에서 애쓰고 고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다 해주고 싶다는 말을 하시는 엄마.
“엄마가 너한테 잘 보이려고 로비하는 거야!” 하시는 엄마의 말이 어쩐지 쓸쓸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시큰하다. “ 엄마, 엄마가 로비 안 해도 엄마 아프고 힘들어서 나 필요할 때 언제든 엄마 곁에 있을게, 엄마가 원하는 무엇이든 해줄게. 그런 걱정하지 말고 엄마는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줘. 그거 하나면 충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주고도 더 못주어 마음 아픈 것이 부모라고 엄마는 말씀하신다. 나는 가끔 힘들면 아이에게 ‘엄마 힘들어’ ‘네가 도와줘’ 하고 이야기도 하는데 ,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나실 텐데도 엄마는 언제나 자신은 안 아프다고 건강하다고, 하나도 안 힘들다고 하신다.
내리사랑이라고 내 자식 키우느라고 정신없어 엄마 나이 드는 것도 잊고 애 키우는 게 힘들다고 투덜대던 나는 이제와 엄마의 흰머리가, 검게 올라온 검버섯이 보인다. 아이 키우느라 빠듯한 살림, 엄마께 턱 하니 내놓을 용돈도 없는데, 냉장고가 웬 말인가?
이럴 때 엄마가 “ 내 딸 능력 있어서 좋네. 걱정 없네 “ 할 만큼 두둑한 통장이 있는 잘 나가는 능력자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금전적인 이득을 따질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할 자유를 얻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위해서 말이다.
엄마의 마음을 위해 냉장고 사러 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나 지금 너무 충분하니까 그런 걱정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지나고서 보니 우리 어릴 때 동네에서 아주머니들과 모여 아이들 놀게 하고 맛있는 거 해 먹고 하던 그 시절이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밥도 잘 못해먹는 마흔둘 딸은 여전히 어린 꼬마다. 엄마 품에 안겨서 환하게 웃던 아가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자기 덩치만 한 아이를 키운다고 낑낑댄다면서 엄마는 여전히 나를 만날 때마다 과거 여행을 하신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사진 속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리고 젊고 이쁘다.
엄마의 소중한 젊은 시절을 내가 다 빌려 썼는데, 나는 언제 이 수많은 마음을 갚을까?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위대한 우리 엄마.
“ 엄마, 우리 만나요 13일! 비워둘게!” “ 대신, 냉장고 말고 엄마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이쁜 옷도 한 벌 사자! 자식 키우느라 낑낑 말고, 엄마 걱정 덜어주게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걱정 말아요.”
엄마의 기쁨과 가벼운 마음을 위해 내 마음의 무게를 조금 무겁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 노력하고 꿈꾸고 실행하고 성장하기로. 엄마 앞에 더는 걱정 없는 딸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