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
어릴 적 우리 집엔 늘 친할머니가 오셨다. 휴일도 없이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정확한 시간에 출근 도장을 찍으셨다. 엄마는 힘이 많이 드셨을 텐데도 한 번도 얼굴에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요즘은 늘 지난날을 돌아보시며 그때 할머니 안 오셨으면 너희 셋 엄마가 어떻게 키웠겠니 하신다. 엄마는 참 속도 좋다.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던 할머니의 잔소리가 나는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결혼해서 생각해 보니 엄마에겐 굉장히 어렵고 불편한 사람, 바로 시어머니라는 존재였는데도 엄마는 어떻게 싫은 티를 한 번도 내지 않으시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할머니 곁을 지키셨을까 싶다. 엄마를 더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반대로, 살면서 우리는 외할머니를 많이 만나 뵈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엄마는 20년 출근도장 찍는 할머니와 살며, 쓰러지신 이후부터는 대소변 받아내는 일까지 하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지냈지만, 정작 친정엄마 얼굴은 잘 못 보고 살았던 것이다. 결혼 후 엄마가 외할머니를 뵌 것은 손에 꼽는 일이었다.
외할머니는 멀리 전라도에 혼자 사셨는데 나는 할머니를 한 두 번 큰 가족행사에 얼굴 뵌 것이 다이고, 고3 겨울방학에 수능 보고 친구들이랑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 며칠 자고 온 기억 말고는 큰 추억이 없었다. 내 기억에 엄마는 가끔 나주 할머니 이거 좋아하시는데.. 할 정도의 말만 하셨을 정도였지만, 정 많고 따뜻한 우리 엄마인데 사는 순간순간마다 얼마나 엄마 생각이 많이 났었을까? 예전에 엄마 살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어버이날 이면 친정보단 시댁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속상한 삶이지만 말이다.
외할머니가 갑상선 암에 걸리셨고, 그러면서 시골집에서 올라오셔서 서울 외삼촌 댁에 계셨던 때가 있다. 계시면서 답답하시니 다른 딸, 아들 집에 왔다 갔다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게 돌아가시기 전에 외할머니와 만든 유일한 추억이었다. 그때 우리 집 형편이 좋지만은 않았어서 엄마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 하셨었다. 어디를 가도 외로우셨을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도 저녁에 손주들 보는 것,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딸과 누워서 이야기하는 30분이 전부였을 것이다. 애정표현에 서툴고 살갑지 못한 나는 할머니가 필요로 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는 정도였다. 고생하는 딸을 보고 너무 속상하시니 그러셨겠지만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듣기에 좋지만은 않아서 오래 곁에 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평생 시골에서 혼자 사시면서 외로우셨을 할머니, 딸인 엄마가 좀 더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손녀딸인 나도 참 철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 엄마는 할머니 생각이 난다면서 그때를 그리워하신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할머니는 갑상선 암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하신 상태셨다. 마음껏 드실 수도 없으니 매일 콩알만큼 드시고 씹는 것, 삼키는 것이 힘들어 수저를 내려놓으시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저녁때가 되면 자꾸 치킨을 시키라고 하셨다. 철없는 동생은 신이 나서 주문을 하면 할머니는 속옷 주머니에서 돌돌 말은 돈을 꺼내 주셨다. 치킨이 도착하면 할머니는 한 조각을 겨우 드셨고, 남동생은 늘 곁에서 맛있게 치킨을 먹었다. 물론 나도 맛있게 먹은 날이 많지만 어쩐지 할머니 쌈짓돈으로 정작 본인은 드시지도 못하는 음식을 자꾸 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동생이 너무 철없이 보여 나무란 적도 많았다.
세월이 지나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이야기를 나누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던 적이 있다. 혼자 사시느라 어느 음식 하나 마음껏 시켜 드시거나 사드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돈 모아 주머니에 꽁꽁 쥐고 있으면 자식들 가져가기 바쁜 것을 자신을 위해선 못 먹고 못 입고 모으기만 하고 살다가 나이 들어 병이 나셨다. 자신이 치킨을 무척 좋아하셨을 텐데 시켜 먹을 줄도 모르고, 혼자 지내시니 드실 엄두도 못 내어 마음껏 드시질 못했던 것이다. 아들네 집에선 불편하고 며느리 눈치 보이신다며 뭐 먹고 싶다고 말씀도 못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남동생은 늘 그런 할머니 곁에서 다리도 주물러주고, 무릎 베고 누워 수다도 떨면서 할머니 곁을 지켰다. 그러니 너무 좋고 편안한 마음에 그렇게 주문을 하라고 동생 옆구리를 찔러주신 것이다.
치킨 생각이 나서 주문을 하면 겨우 한 조각 씹어 삼킬 정도지만, 아프고 나니 다 소용없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손주들 먹는 거 보며 행복해하고 싶어서 매일 주문하라고 했을 거라면서 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에 눈시울을 붉히셨다. 할머니가 건강히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어땠을까? 우리 다 크는 것도 보시고 이렇게 결혼해서 손주 낳고 사는 것도 보셨으면 정말 이뻐하셨을 텐데, 왜 그렇게 빨리 가셨을까?
엄마는 자신도 치킨을 좋아하시면서 늘 살찐다고 먹으면 안 된다고 하신다. 늘 힘들게 벌어 자식 셋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한번 마음껏 사드신 적이 없으시니 좀 살만해졌어도 여전히 혼자 집에서 먹고 싶다고 치킨 한 마리 주문해서 먹는 일이 쉽지 않으신 거다. 가끔 엄마 집에 가면 다른 저녁거리가 많아도 꼭 치킨 한 마리 사들고 들어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남동생도 그렇다. 엄마 혼자 평소에 드시고 싶어도 못 사드시는 것을 아니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먹나 싶어서 이다. “뭘 이런 걸 사 오니?” 하는 말은 “사 와서 고맙다.” 는 말이고, “다음부터 이런 거 사 오지 마라.” 하는 말은 “딸이 이런 거 사 오니 맛있는 거 먹어서 고맙네.” 하는 말이다. 가끔 주문전화로 엄마 치킨도 시켜 드리고, 맛있는 것도 문 앞으로 배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엄마 걱정 마, 엄마 평생 먹고 싶은 만큼 내가 다 사줄게!
내 아이도 치킨을 참 좋아한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길 때 마음껏 사줄 수 있고, 아무 날이 아니어도 주문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말엔 나가서 외식을 즐기며 사는 우리는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어느 광고회사 대표에게 “나에게 성공이란?” 하고 물었더니 “ 다 못 먹고 남기더라도 먹고 싶은 메뉴를 두 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할 수 있을 때 많이 많이 하고 살아야겠다.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나 참 잘 살았어’ 해야지, ‘못해본 게 너무 많은데 억울해’ 하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사주고, 돈 걱정 없이 우리 엄마 호강시켜 줄 수 있는 만큼 그만큼 꼭 성공하고 싶다. 돈이 많은 것이 성공은 아니다. 많아도 잘 쓸 줄 모르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니까. 열심히 즐기면서 잘 벌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지인들과 나누면서 자식에게 든든한 그런 사람으로 살려면 건강해야 한다. 건강해져서 즐겁게 치킨을 먹을 그날까지 더 열심히 비우고 운동하고 나를 가꾸며 살자.
할머니 그때 치킨 사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