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야 나보다 어렸을 아빠가 보였다.

아빠에게

by 줄리썸머


나는 종교가 없다. 어렸을 때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열심히 절을 한 적이 있지만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고, 초등학생 시절 친구를 따라 여름 성경학교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도 그랬다. 어쩐지 아직까지 나는 종교와 깊은 관계가 없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친구를 따라 -아주 특별했던 날, 기억엔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것 같은데 - 성당에 미사를 보러 갔다. 신부님의 그날 말씀 주제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내용들 속에서 딱 하나 뚜렷하게 기억되는 메시지가 있다. ‘용서는 다른 누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꼭 해야 하는 거라고, 누구를 위해 용서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하라고.’


그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을 용서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가 되고 나서도 쉽게 용서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빠.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의 아빠는 아주 짧은 순간순간의 장면뿐이다. 1년 365일을 자유롭게 사셨고, 어쩌다가 아빠가 들어오시는 날은 우리 모두 초 긴장을 했던 날이었다. 엄마와 잦은 싸움으로 우리는 늘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날이 많았고, 그런 아빠를 말리다가 다친 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들에게 사과를 하신 적이 없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부모로서 보여주어야 할 멋진 모습을 보여주신 날이 드물었다. 사업을 하시니 어쩌다 밀린 대금을 받아 기분이 좋으신 날은 오랜만에 두 손 가득 먹을거리를 사서 집에 들어오셨지만, 그런 날도 우린 그저 “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아빠와 최대한 먼 거리에 앉고, 아빠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던 것 같다.


우리에게 지나치게 거칠거나 무섭게 대했다기보다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늘 큰소리를 치시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는 날에 그 감정이 격해지셨기에, 참 많이 두렵고 무서웠다.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우리에게도 아빠가 화를 내실까 봐 어린 동생들을 작은 내 덩치 뒤로 숨긴 채 엉엉 울며 껴안아 주던 나날들이 아직도 내 마음속 기억에 살아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아빠 나이 서른 즈음 워낙 잘 나가시던 사업에서 실패하신 이후로는 마음을 못 잡으셔서 힘드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땐 그저 괴물처럼 무서운 아빠가 집에 돌아오시는 날이면 우리는 악몽을 꾸듯 움츠리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났고 아빠도 나이 들어 기운이 없어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에겐 큰소리치는 남편이다. 밖에 나가서 큰소리 못 치고, 자식들에게 떳떳하지 못하니 그저 가장 만만한 엄마에게만 큰소리치시는 아빠가 정말이지 너무 못나보여서 더 싫었다. 결혼을 하면서도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언제나 너희들 결혼하는데 ‘흠잡힐까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그런 아빠라도 있어야 너를 얕잡아 보지 않는 다면서 언제나 우리 걱정을 많이 하셨다.


워낙 엄마에게만 그렇지 밖에서는 세상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으신 우리 아빠는 사위를 보고 나서는 아주 멋진 모습을 뽐내며 고상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8개월쯤 되었나, 집에 들었는데 엄마 아빠가 다투고 계셨다.


그때 나이 예순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그러시는 태도에 너무 화가 났다. 자식도 나이 들면 어려운 법이라는데 아빠는 왜 그런 감정조절이 안되시는 걸까?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아빠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셋이 아빠를 아빠로 인정하고 대접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엄마 때문이라고, 제발 엄마 그만 괴롭히고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수십 년 참았던 서러움이 폭발해서 집에 와 며칠을 배가 땅겨서 앓아누웠다. 나의 마음을 알리 없는 남편에겐 속마음 이야기도 못하고 나 혼자 끙끙 그렇게 며칠을 아팠던 날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 아빠는 며칠을 술 마시고 오셔서 자식을 잘못 키웠다. 엄마가 그렇게 키워서 자식들이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면서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고 했다. 이젠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지쳐갔다. 평생 이런 아빠의 그늘은 지워지지 않는 걸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더더욱 아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자식에게 이럴 수 있지? 아빠는 정말 단 한순간도 우릴 자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을까? 왜 그렇게 밖에 못 사셨을까?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찼다. 고백하자면 아빠가 아프지 말고 일찍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다.


지금까지도 모자라 남은 시간을 엄마 곁에서 엄마를 괴롭히면서 사실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삼 남매를 다 시집 장가보내고 두 분만 남던 날, 난 많이 두려웠다. 이젠 엄마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고, 평생 엄마와 우리들 고생을 시키시고도 모자라 아파서 남은 생을 더 힘들게 하시며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평생 아빠를 증오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던 아빠가 아주 조금씩 변하셨다. 손주가 자라는 것을 보시더니 손주가 보고 싶어 집 앞까지 오셨다가 집으로는 올라오지도 않으시고, 아이를 불러 빵을 한가득 사서 들려 보내고 돌아가시질 않나, 고구마 사놨다, 토마토 한 상자 주문했다 하시면서 그 핑계로 자꾸 집으로 우리를 불렀다. 자식이 클 때는 어렸고 먹고살기 힘들고, 되는 일이 없어 방황하느라 이쁜지 어떤지 크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살았노라고, 그러다 우리가 크고 나니 어려워서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노라고 말이다. 그러니 술이라도 드셔야 더 더 센 소리로 우리들에게 큰소리를 치셨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 낳아 기르는 10년 아빠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 아주 조금씩 옅어졌다. 아빠도 어쩜 너무 외롭고 힘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아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준 적이 없어서 그게 나쁜지도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봤다. 그래도 여전히 용서라는 단어는 마음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울로 강의를 가던 며칠, 출장을 간 남편 대신 아빠께 부탁을 드렸다. 태어나서 40 년 넘게 살면서 처음으로 한 부탁 , 손주 이뻐하시는 아빠니 들어주실 거야 싶어서 새벽에 우리 집으로 오셔서 아이와 있어주시다가 학교에 좀 보내주고 가달라고 말이다.



정신없이 수업을 하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3시가 넘었다. 부랴 부랴 와서 아이를 만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할아버지가 고깃국을 차려서 둘이 같이 아침을 먹었다고 했다. “어 그랬어, 다행이다. 학교에서 어땠어, 오늘 엄마 없어서 속상하진 않았어?” 하면서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아빠에게 고맙다는 생각보단 그래도 아빠가 있어서 다행인 순간도 있네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정신없이 짐을 내려두고 부엌으로 갔는데 아침을 먹은 그릇들을 깨끗하게 설거지해서 엎어두고 말끔히 치워두고 간 흔적 사이로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냉장고 가득 들어있는 과일 꾸러미를 보고 부엌에 주저앉아서 한없이 울었다.


이제와 아빠가 덜 미운 것도 화가 나고, 왜 그동안은 그렇게 안 해 줬나 억울하기도 하고, 아빠가 엎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죄스럽기도 하면서, 그래도 아빠가 나를 아끼기는 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와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아주 조금씩 아빠를 용서하고 있다. 마흔이 넘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다 보니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아빠가 책임져야 했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어린 시절의 상처를 걷어내고 반쪽이 아닌 온전한 웃음을 되찾고 싶은 나의 이기심일지라도, 과거엔 그렇게 미웠던 아빠지만 이제는 편안한 내 마음을 위해서라도 아빠를 용서하면 좋겠다.


어쩌면 아빠도 매 순간 후회하며 사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많이 와 버렸고, 사과하는 방법도 배우신 적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린 배워야 한다. 용서하는 법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도, 그러면 상대방이 못하더라도 배워서 익힌 내가 먼저 하면 되니까


그리고 아이에겐 꼭 알려주고 싶다.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도, 사과하는 방법도, 그리고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해서 용서하는 방법도.


아빠를 완전히 용서해 드릴 그날까지 아빠가 내 곁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 설마 그건 해주시겠지. 다른 것 많이 못해줬어도 , 그건... 그건 해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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