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나는 손재주가 없어서…”
엄마는 바느질, 뜨개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본인이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다림질도 두려워하셨고, 그림 그리는 사람을 신기해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뜨개질, 바느질 사랑하는 우리 두 자매를 보면 항상 감탄하시며 신기해하셨다. 손재주 없는 자신을 안 닮고 아빠를 닮아서 우리들이 손재주가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손재주는 타고나는 것인 줄 알았다.
아홉 살부터 밥을 해서 할머니를 돕고 오빠들 대학 갈 때까지 뒷바라지, 동생들 공부하고 독립하고 결혼할 때까지 밥 해 먹이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결혼해서도 평생 삼시세끼 차리는 것도 모자라 아빠 대신 생활비 벌러 식당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우리 키워주신 엄마의 손이 나에겐 더 대단한 손재주이다.
간도 보지 않으시고 본인은 냄새 때문에 드시지도 않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낸다. 남편과 자식들은 골고루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긴 밥상, 결혼 10년 밥밥하며 살아보니 이보다 더 큰 재주가 있나 싶다.
엄마도 스케치북에 펜 들고나가서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면 엄청난 그림을 그렸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모도 외삼촌도 엄청 그림을 잘 그리시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내시느라 다른 것에는 눈도 돌리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 엄마는 그저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며 난 재주가 없다 없다 하셨다.
어젯밤 안 하던 운동을 하고 들어와 샤워하고 누우니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았다. 늦게 퇴근한 남편 옆에서 흘려듣던 대화의 희열, 양희은이 출연을 했다. 모진 세월을 다 겪어내고 인생의 굴레에서 조금은 의연해진 듯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그분의 목소리, 가사 하나하나가 삶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곱씹어졌다. 노래는 공기반 소리반이 아니라 소리반 삶 반인데 거기에 더 필요하다면 밥공기 반이구나 하던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양희은의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소리 속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다.
타고난 재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랜 세월 내가 열심을 다하고 갈고닦으면 나만의 손재주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내야 해서 하게 되었더라도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해냈던 순간들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재주가 되는 것 말이다. 양희은에게는 노래가 엄마에게는 요리가 그런 재주였다. 재주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를 말한다는데, 손재주는 손으로 무엇을 잘 만들어 내거나 다루는 재주를 말하는 것이니 타고나지 않아도 능력이 충분히 출중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손재주가 없어서 라는 말은 틀렸는지도 모른다. 재주는 없더라도 손재주는 키울 수 있다. 힘든 삶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글로 써 내려가 목소리로 표현한 양희은처럼 고사리 같은 손으로 60년 밥하고 칼질하고 온 평생 바쳐 음식을 한 엄마의 손이 만들어낸 엄마만의 손재주를 보면 알 수 있다. 눈감고도 할 수 있는 요리 말고 이제 엄마의 새로운 손재주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림이든 인테리어든 아주머니들과 여행 가서 누르는 사진의 기술이든 엄마가 한평생 없다고 생각해서 시도도 못해본 그 많은 일들을 이제는 즐겁게 도전해 보시면 좋겠다.
엄마가 난생처음 윗집 아주머니를 따라 집 앞 분식집에 가신 적이 있었는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흥분하며 이야기하신다. “돈가스 세트를 시켰는데 돈가스에 쫄면도 주고 김밥도 세 개 썰어 주더라. 이렇게 푸짐한데 몇 천 원 안 해. 정말 맛있었어. 너 생각 나드라. 언제 엄마가 한 번 사줄게.” 평생 자식들 해 먹이시느라 남이 해준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엄마는 모르고 사셨다.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고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남이 해준 음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70이 다 되도록 그 맛을 모르고 살았던 엄마가 이제야 세상에 눈을 뜨셨다.
평생 밥 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니 결혼해서 취미에도 없던 밥 해가며 아이 키운다고 힘들어하는 딸 생각에 본인도 지겨우셨을 음식을 또 온종일 해서 가져다주시는 것이다. 딸은 일주일에 2-3번이 멀다 하고 아이와 나가서 사 먹고 집에 주문해서 먹고 하던 걸 모르고 그 소소한 분식을 먹으면서도 딸 생각만 한 엄마를 생각하니 아침부터 눈물샘이 멈추질 않는다. 이젠 평생 해온 귀찮은 밥 그만해 먹고 자주 사드시면 좋겠다. 바쁘다고 핑계 대지 말고 엄마 밥 사드리러 자주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