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기억이 많은 사람이 작은 것에도 행복해한다

나 스스로에게

by 줄리썸머

텔레비전 안 보고 산 10년 동안 참 많이 뒤처졌다. 이제 겨우 일주일에 한프로 보기 시작한 우리 집은 딱 4개의 채널만 나온다.

​그러니 다른 채널은 꿈도 못 꾼다

이미 종영되고 남들에겐 다 지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연히 보게 된 알쓸신잡에 뒤늦게 반해서 설거지하면서 보고 청소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듣고 그랬는데 독서모임을 대단한 분들과 나누는 기분, 그런데 독서보다 더 깊은 느낌이다.

그러다, 흘리면서 들었던 영상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사소한 기억이 많은 사람이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산다

​​

어떤 기억이 제일 많이 나는지 언제가 가장 행복한지 묻는 장면에서 어느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과 갔던 어떤 곳에서의 추억

손잡고 걸었던 그날

그때가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우리는 어쩌면 항상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좋은 엄마이고 그래야 만족스러운 하루를 살았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날은 의미가 없었다고 여기며 흘려보내고 특별한 어느 날을 위해 지금을 흘려보내며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나의 마음을 잡게 해 준 것도,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꺼내 보던 일도 생각해보면 그런 특별한 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름이면 얼음에 수박을 동동 띄워 두고 가까운 계곡에 가서 발 담그고 물놀이하던 기억, 엄마가 아침부터 반죽을 밀어서 도넛을 한 바구니 튀겨주셨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 돌아서서 바라보니 바구니에 도넛이 삼분의 일도 안 남아서 어이없이 다 같이 웃었던 기억, 술 한잔 드신 아빠가 비틀거리시면서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사 와서 잠든 우리를 깨우시며 먹으라고 하시던 기억, 아이 낳아 기르다가 엄마랑 같이 유모차 끌고 나가서 엄마가 나를 키우던 날을 회상하며 옛날이야기를 들여주던 기억, 구멍 난 원피스를 엄마가 바늘로 꿰매 주었는데 너무 이상해서 뜯어서 내가 다시 했더니 더 예뻤던 기억

​이런 많은 기억들은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에, 기억 속에, 세포 안에 쏙쏙 스며들어가 있었는지 힘들 때면 어김없이 튀어나와 내 마음을 간지럽힌다.

어느 선배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그날은 상을 치르느라 울새도 없이 사람들을 챙기고 엄청난 일을 어떻게 지나 보냈는지도 모르게 상처를 훌훌 넘겨 버렸는데, 이제와 십 년이 지나도 밥을 먹을 때 밥상에 올라온 멸치만 봐도

“ 엄마가 정말 좋아하셨는데” 하면서 오열하게 되더라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아주 사소해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평생 두고두고 떠오르는 그런 것들은 아닐까?

나의 인생을 돌아보고, 아이와 동화를 읽으면서 나는 요즘 자꾸 과거로 여행을 한다. 그런데 문득문득 잊고 지내던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돌아다니다 딱 들어맞아지면 그날의 그 순간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오듯이 눈앞에 그 일들이 펼쳐진다.

​그래, 넉넉하지 않았어도 사는데 바빠 늘 힘들었어도 일상을 즐기고 사랑받고 나누며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 힘이 되어 지금의 나를 세워주는 거구나. 나는 어떤 사소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가며 살 수 있을까

매일 자주 웃고, 그래서 문득 행복하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그런 삶을 사는 준이가 되도록 해야겠다. 그러니 엄마부터 그렇게 살고 준이에게 나누면서 사소한 것에서 행복해하고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준이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행복 바이러스가 전해지도록 그런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오늘 문득 저녁밥을 먹다가 준이가 오열하면서 운다.

수영, 물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는 수영 싫어했어?” 하길래, “아니야 네가 어렸을 때 항상 엄마가 워터파크 데리고 다녔어. 얼굴이 아파서 알레르기 생길까 봐 못하는 거지” 했더니, 갑자기 작년에 뉴질랜드 이모네 집에 갔을 때 자신은 슬라이드가 있는 수영장에서 너무너무 재미있고 신났는데 엄마가 아파서 못 들어갔던 것이 생각났다면서 엄마가 아파서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고, 이제 괜찮아져서 너무 다행이라고 하면서 밥 먹다 말고 울어서 같이 울음바다를 만들 뻔했다.


속이 꽉 찬 아이, 엄마가 아프면 아이가 얼마나 철이 빨리 드는지 모른다. 특별한 추억 못 만들어 준다고 미안해 안 할게. 매일을 나누고 즐기며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자 준아.

​이렇게 다짐하고 또 매일 실천 못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그래도 우리 잘해보자

​아이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작은 일을 행복하게 여기며 사는 삶의 태도’ 를 잘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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