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마니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버지에게

by 줄리썸머

누구나 나이가 든다. 어려서는 이해가 안 됐었는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라테는 말이야! 이렇게 나도 나이가 드는가 부다. 자꾸 지난 추억에 젖는다. 그게 정상인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매일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잠은 큰 아버지 댁에서 주무셨지만 눈만 뜨시면 버스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그때 시간이 7시였다. 그렇게 십 년도 넘게 할머니는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빠지지 않으시고 우리 집에 출근 도장을 찍으셨다. 그런데도 속이 좋은 엄마는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할머니의 잔소리에도 늘 웃으시며 대답했다. 그땐 할머니가 미웠던 적도 있었다. 우리 아빠는 형제 중에 여섯째인데 왜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셔서 엄마를 못살게 굴지? 생각했던 것 같다.

사근 사근 하고 성격 좋은 우리 엄마가 편하셨을 것이다. 뭐라고 잔소리해도 ‘아, 그래요?’ 하고 넘기는 엄마가 좋으셨던 것이다. 나도 그런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잘하려고 할수록 우린 힘들어졌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무수한 서운함들이 오히려 더 단단한 벽을 세웠다. 그저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그 자리에선 ‘네네’ 하면 될 것을,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는 철칙을 가지고 살았던 나에겐 늘 버거운 일이었다.


앞에선 웃으며 대답하고 와서 혼자 운 날들이 많았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재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 마음을 내어주는 사이가 되는 것, 그거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갔다. 어머님은 아버지를 따라 숟가락만 들고 신혼살림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수도 없이 이사 다니며 아이 셋도 다 집에서 출산하신 대단한 분이시다. 성실함이 무기셨던 아버지와 엄청 알뜰하신 어머님을 닮아 아이 아빠는 대단히 성실하고 알뜰하다.


아버님 어머님이 젊으셨을 때, 한번은 쌀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다가 아버님께서 시골 형님댁에 쌀을 빌려 달라고 가신 적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 가혹하게 거절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그 설움을 마음에 담고 잊지 못하신 모양이다. 그 이후 오랜 세월 왕래하지 않고 지내셨다가 ‘내가 더 큰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신 아버님은 이후 열심히 형님댁에 방문을 하셨다고 했다. 내가 결혼을 하던 첫 해부터 아버지는 매 년 형님이 계신 시골에 가셔서 쌀가마니를 잔뜩 주문하셨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1년 내내 먹을 쌀을 한꺼번에 보내주셨다.



그땐 둘 곳도 없는 쌀을 누가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주셨지? 생각했던 적도 있다. 오래 두고 먹으면 맛도 덜한데, 쌀가마니를 옮겨가며 쌀통에 담는 일도 버겁다며 툴툴 댔었다. 그렇게 7-8년을 꼬박 아버지는 불편하신 다리를 하시고도 시골에 가시면 어김없이 주소를 부르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리고 우린 보내주신 쌀로 잘 먹고 잘 지내며 살았다. 몇 해 전부터 몸이 힘들어지신 큰아버지 셔서 더 이상 벼농사를 짓지 않으신다고 했다. 농약 안 뿌리고 정직하게 키운 쌀이라고 그동안 열심히 사다 먹었는데, 쌀도 못 사고, 형님도 아프시니 아버지 마음이 많이 아프셨던 모양이다. 그러다 재작년 형님은 많이 아프셔서 돌아가셨다. 누군가 곁을 떠날 때마다 아버지는 많이 약해지신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다가 술 한 잔 하시면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가끔 눈물도 흘리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라고 엄지를 척척 들어 올려주시는 아버지에게 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쌀가마니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너무 없이 살 던 시절에 밥 굶을 까 봐 전전긍긍 하셨던 그 수많은 설움이 담긴 마음이었다. 자신의 여력이 되는 선에서 자식들 밥은 굶지 않게 해주고 싶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매일 보내주시는 쌀로 쌀독을 채우고 살다가 쌀을 사다 먹은 지 2년, 그 사이 엄마가 여러 번 사서 친정아빠 편에 보내주시고, 내가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며칠 전 준이 밥을 주려고 보니 쌀이 없다. 집에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살았다. ‘준아, 오늘만 라면 먹자.’ 준이는 ‘오예’ 신이 났지만 나는 아차 싶었다. 요즘 내 정신이 어디로 나가 있는지 쌀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살았나 싶어서 말이다. 남은 현미로 2일 현미밥을 지어먹고 어제 대형마트에 가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쌀로 10kg 사들고 오면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쌀이 없어서 내가 라면 줬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마음 쓰실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밥밥 돌아서면 아이 밥 차려주기 힘들다고 투덜댔다. 밥은 엄마의 사랑이었는데, 난 그 사랑을 따뜻하게 지어주지 못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매일 찾아오는 귀찮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아이 입에 들어가는 고마운 마음이라는 것을 왜 자꾸 잊을까? 연금을 쪼개서 자식들 쌀독에 쌀을 채워주신 아버지 마음처럼 아이 몸에도 사랑이 듬뿍 담긴 엄마의 정성을 건네줄 수 있도록 신경 좀 쓰자.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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