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은 사라졌다

남편에게

by 줄리썸머

“삐삐삐삐삐”


이른 저녁 남편이 낯선 여자와 함께 집으로 귀가했다.


“저녁상 좀 차려와.”

​​


들어서는 남편의 옷자락을 끌고 방으로 들어와서 같이 온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첫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이제부터 우리와 같이 살거라고. 그러더니 남편은 거실로 나가 그 사람과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에 불을 켰다. 등신!

가스불을 세게 켜서 음식을 지지고 볶는데 속에서 천불이 났다. 우아하지 못하게 그 앞에서 소리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을 해야하는데 가슴이 먼저 움직였다. 그러다 참을수가 없어서 방으로 조용히 들어왔고, 소리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울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울다가 지칠때쯤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너무도 태연한 얼굴로 왜 저녁을 차려주지 않느냐고 하길래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손바닥으로 찰싹 내려쳤다. 우아함은 사라졌다.


“컥”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이 었다.


너무 생생해서 온 몸이 바르르 떨렸다. 몸은 이미 두 시간쯤 울고 난 상태의 컨디션이었다. 꿈속이지만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눈은 부어서 떠지지도 않았고, 온 몸의 기운이 밖으로 다 빠져나간 것 처럼 힘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등돌리고 자고 있던 남편의 등짝을 나도모르게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자고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 그래?”



​​​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지만 꿈에서 깨고도 너무 리얼했던 남편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 상황에도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 가스불을 켰던 나 자신이 바보 멍충이 같이 느껴졌다.



말이 없는 남편과 사느라 너무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평소에도 워낙 말수가 없고, 화가 나면 수십 일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내 마음은 항상 오케스트라 연주를 했다. 출장을 가서도 ‘일하고 들어왔어’ 한 마디면 끝이고, 출장지에서 술이라도 먹는 날엔 자연스럽게 다음 날 통화해야 하는 삶을 살면서 그 사람에게 적응해 가는 나의 매일이 참 외로웠구나 싶었다. 그래서 왜 전화를 안 하느냐고 하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 마음 구석에 깔려있는 ‘내가 놀러왔어? 일 하잖아!’ 하는 말투가 고스란히 전해지면 상대적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얼굴을 못보고 살았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턱이 없어 답답한 매일을 살았으면, 그런 꿈을 꾸었을까? 나는 나 스스로가 안스러웠다. 남편은 꿈에 너무 의미를 부여한다고 뭐라고 했지만, 꿈은 무의식이 만들어 낸 내 사고의 집합체라고 믿는 나에겐 항상 의미가 깊다.

10년도 다 되어가는 그날의 에피소드는 아직도 우리에게 생생하다. 남편은 가끔 사람들에게 자다가 등짝 맞아봤느냐면서,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하고 10년 바람난 사람처럼 바빴다. 일과 연애하고 일과 결혼해서 일과 바람까지 났던 남편과 사느라 독박육아에 열혈엄마가 되어 준이 데리고 못하는게 없는 내가 되는 동안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그때는 나만 힘든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아내와 어린 아이를 두고 집에도 못 오고 밖에서 외롭고 힘들었을 남편 생각은 못하고 살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다. 책 읽고 글을 쓰면 나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내 삶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의미를 불어 넣을 수 있다고 하더니 효과가 있는 걸까? 이제야 아주 조금씩 남편이 보인다.

“당신 바람난거 아니야?”


잠들려고 하는 남편 옆으로 조용히 이불을 들추며 들어가는데 남편이 나에게 툭 한마디 던진다.


“매일 뭘 하는데 늦게까지 그래? 잠은 일찍 자고 뭘 하든 해야지!”


“응, 그래서 이제 일찍 자려고,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기로 했어.”

얼굴 볼 시간도 없이 사는게 싫어서 그렇게 툴툴거렸는데 이젠 내가 너무 내 시간 쓴다고 밤 낮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침대방에 혼자 누워 넛튜브만 보고 있는 남편이 맘에 안든다는 소리만 했다. 말 없는 남편이랑 사느라 말이 많이 줄었다. 말을 할 수록 더 외로워져서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쉴새없이 떠들던 나와 아이가 조용해 지기 시작하니 집안이 고요하다. 그러니 밤마다 나는 서재에서 남편은 침대방에서 아이는 자기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매일 입버릇처럼 저녁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던 우리의 꿈을 내가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매일 누워있는 남편이라고 투덜대지말고, 새벽시간 야무지게 쓰고 저녁과 주말엔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남편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바뀌는 걸로!

배우자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거나, 때론 다른 어떤 것에 푹 빠져있을때 사용하는 단어만이 아니라 어떤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도 바람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서로 나이들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테니 그 시간을 다른 곳에서 각자 보내는 바람 말고 우리 둘이 더 잘살자는 바람으로 말이다.

이대로 매일 혼자쓰는 밤 시간을 즐기다가는 자다가 등짝 맞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르니까. 여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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