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린 그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더위에 굉장히 취약한 편이라 일 년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보내는 여름에 탈수 증상으로 바닥을 기어 다닐 힘조차 없이 쓰러져서 정말 말 그대로 남에게 들려서 병원에 실려가는 경험을 한 후에는 매년 여름마다 스멀스멀 그때의 공포가 올라온다.
역시 사람은 뭐든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고 필요성을 느끼는 건지.. 원래는 물을 정말 안 마시는 편이었는데 이날 이후 여름에는 적어도 하루에 2리터 정도씩은 챙겨 마시려고 하고 있다.
내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롤라덴 셔터를 올리는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잠에서 덜 깬 눈으로 양치를 하며 거실 베란다와 방 창문을 열고 내리쬐는 햇볕을 잠시 맞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되는데 여름에는 이 창문을 여는 부분이 특히나 중요하다.
독일 여름은 낮에는 햇볕이 굉장히 강하고 뜨겁지만 이른 아침에는 주로 선선한 편에 속하므로 전날 낮에 받은 열기를 다음날 아침 일찍 창문을 열어서 식혀주고 있다.
며칠 전부터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어제는 체감 34도의 덥고 습한 날씨였다.
일기예보를 미리 챙겨보고 유독 더울 예정인 날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느낌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하게 평소에는 잘 안 열던 작은 창문까지 열어가며 환기를 시킨 후에 햇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그때부터 창문을 닫고 롤라덴 셔터를 완전히 내려버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는 흡사 뱀파이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 많이 더운 날에는 저녁 늦게 잠시 환기를 시키는 편인데 어제는 유독 말이 안 되게 더웠으므로 저녁에도 별로 선선하지가 않아서 창문을 열지 않았더니 오늘 아침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어마어마했고 여느 때와 같이 창문을 열어서 빨리 온도와 습도를 낮췄다.
그렇게 아침에 창문을 열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벌레들이 집 안으로 날아드는 건 한여름에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벌레를 정말 싫어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일단은 집안의 온도와 습도를 낮춰야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이 창문을 열 수밖에 없는데 역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아무래도 파리랄까.
나는 벌레를 죽일 때에 산채로 잡는 느낌이나 터지는 느낌을 굉장히 싫어하므로 주로 신발로 때려잡아서 뭉갠 후에 처참하게 전사한 적군의 사체를 치우는 편에 속하는데 그것도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므로 날개 달린 녀석들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살생을 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 그들을 밖에 내보내려고 유도하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나저나 이놈들을 보다 보면 사람처럼 나름의 다른 성격이 있는 거 같다.
밖으로 다시 나가게 하려고 여름의 필수템인 전기 파리채를 휘두르는 자의 분노를 인지하고 바로 열어둔 창밖으로 나가버리는 눈치가 빠른 기특한 녀석들도 있고
살려주려고 밖에 나가라고 해도 계속 주위를 뱅뱅 돌면서 끊임없는 애정표현을 하다가 잔뜩 짜증이 난 내 손길에 결국 잡혀버려서 사랑에 죽는 순정파 녀석들도 있고
정말 느려터지고 멍청해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분위기 못하는 맹한 녀석들도 있고 참 가지각색이다.
어제 들어온 녀석은 분명 멍청한데 재빠르기만 해서 내 손에 죽지는 않고 열어둔 창문도 못 찾고 10분 정도를 내 성질을 살살 긁어대며 뱅뱅 돌다가 결국에는 지 살길을 찾아서 나가는 걸 보니.. 어쨌든 스피드를 갖추었으므로 명줄이 꽤나 길 녀석일 거 같다.
바로 방금 내 손에 운명한 한 녀석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부엌으로 들어왔길래 친절하게 출구는 저쪽이라고 안내를 해줬건만 일요일 아침 모닝커피 전이라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정신을 못 차리고 느리게 빙빙 돌다가 창문에 앉으며 몸을 그대로 내주기에 주님 곁으로 보내버렸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부터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현재 체감 22도라서 그저 기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