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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색 돌멩이 Nov 14. 2024

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16.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한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W41eBhJD32c

<Autumn Scene � Chill lofi no ads / chill lofi hip hop beats for relax>




- 뭘 모르겠는 표정 짓지만 말고 얘기를 해!


한창 작업장이 뒤숭숭하고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성이 난 푸바오가 출근하자마자 뭔가를 다그치기에 문서를 봐야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라

벙찐 표정으로 서 있는데 불현듯 사자후를 들었다. (이 사람, 실제로 몸집이 커서 무서울 때가 종종 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일정이나 주문 내역 같은, 일하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평소에 머릿속에 잘 박아두고는 있지만

그의 말이 약간의 상처가 되어버린 건 별 수 없었다.


사람이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일 수는 없는 거지 뭐.

그의 말들 덕에 푸바오에게 종종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항상 감사한 사람이지만.


_

예전에 잠깐 같이 일했던 이모님이 생각난다.

꽃분할모님과의 불화 때문인지? 지금은 비록  나가셨지만.


시유 작업을 주로 하는 유약사였던 그분은

도자기 작업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던 분이라 대부분의 작업에 능숙하셨다.

심지어 택배 포장도 신속 깔끔하게.


언행에서도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분이셨다.

말수가 적은 분이셨지만 온화한 말투를 가지셨고

누구와 대화를 이어나가든 본인 말이 끝난 뒤에는 항상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벌써 못 뵌 지 반년 가까이 흐른 것 같은데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누구처럼 '아니, '로 시작하는 말버릇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진한 인상이 남는 걸 보면 그분의 말투와 표현 방식은

상대에게 확실히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었던 것이리라.


_

물론 바쁘고 정신없으면 말이 날카롭게 나갈 수 있다.

근데 그건 그것이고, 당연히 모든 상황에서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대방도 없다.

(끔찍이 사랑하는 내 반쪽과 말다툼하는 일은 흔해 빠졌고, 내 자식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라는 부모들도  자녀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지 않나.)


결국 말을 가꿔가는 건 스스로가 해 나아가 야만 하는 숙명 같은 것.

말을 잘 써야 한다는 건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다.


약간의 비약을 섞으면, 말 가꾸기는

사람이기에 짊어지고 가야 할 굴레이자

사람이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닐까?


_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확실히 한 사람의 매력이 되고 나아가 그 사람의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친구 부부의 소개 아닌 소개로 어떤 여성을 만나게 된 적이 있다.

그분은 신부 쪽의 지인이었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부부의 집에 있었다가 잠시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기억한다.

밖이 쌀쌀해서 신부가 그 지인에게 옷을 빌려주는 일이 있었다.

신부가 건넨 옷이 조금 두터웠는지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 와 고마워. 근데 이건 좀 따뜻할 것 같아!


헐.

당장 사랑한다고 말할 뻔했다. 말을 저렇게 예쁘게도 할 수 있구나..


만약 신랑이 나에게 두터운 옷을 준 경우라면 난 어떻게 말했을까?


- 더워 D지라고 이런 걸 주고 앉았냐?


~_~



그녀가 불어낸 아름다운 말의 향기는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말을 밉게 하고 돌아설 때마다 그 순간의 그 사람이 떠오르는 걸 보면. 


_

나도 대화를 잘 해낸 기억보다는 후회스러운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다.

왜 이렇게 '마트에 환불받으러 온 사람'처럼 얘기하냐는 말도 들은 적이 있고.


그런 슬픈 기억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싶었기에

스피치 관련 서적들과 영상들을 보고 말 잘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했던 시기가 있었다.

말을 맛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 잘하는 사람은 진짜 섹시해 보이니까.


가만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난 오히려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능숙하고 유려한 화술로 상대방을 끌어당기기보다는 (사실 그럴 자신도, 에너지도 없다.)

그냥 별 말 없어도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 던지는 말에 통찰이 있고 (똥찰이면 어때. 그냥 그런 10선비같은 캐릭터로 살래 난.)

상대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도록 지나치지 않은 유머를 섞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 같다.


성미가 급한 사람이 왜 말이 없냐고 다그쳐도

그냥 나는 그렇게 살란다.

오늘도 푸바오에게 왜 말없이 웃냐고 여러 번 들었지만.. ㅋㅋ

그냥 나는 그렇게 살란다.


생각 없이 던지는 말로 상대를 아프게 할 바에야 그게 낫다.


_

그리고 또 중요한 건 내 안의 말, 나에게 하는 말이다. 

바로 오늘 일어났던 일 덕분에 말이란 것에 대해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오전에 잠시 쉬다가 다시 일을 하러 작업장으로 들어가는데,

주머니에 넣었던 장갑이 보이질 않았다.

뒤를 돌아 앉아있던 의자를 보니 장갑은 거기에 놓여있더라.


순간 내 속에서 문장 하나가 토해졌다.


- 내가 이렇다니까.


헐.

으잉? 나 언제 이렇게 하등 도움되지 않는 내 귀에 귀지 같은 말이 입에 붙었지?

갑자기 좀 싱숭생숭 해졌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 내가

나를 멸시하고 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씨는 그런 말.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하지 말자.


><><><

그간 풀어뒀던 정신 기강을 다시 잡아야겠다.

내일은 의식적으로 이쁜이 말투를 한 번 장착해 봐야지.


작업장 식구들 중 한 사람만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이번 주 근무도 의미 있는 한 주가 될 거야.


이런 기특한 녀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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