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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색 돌멩이 Nov 19. 2024

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17. 박살 난 하루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50rsY5MhvgY

<사고 쳤어요 - 다비치>




산뜻하게 기분 좋은 일기를 쓰고 싶은 날이었는데

도저히 넘어가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져서 급히 일기 주제를 바꿨다.


이놈의 파란만장한 일생

글감이 많아져서.. 좋다.




- 어어엌!!!!!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간쯤 되었을까.

우리 작업장 창고는 빙 돌아가야 하는 위층 건물(?)에 있다.

필요한 물건들을 싣고 오려고 작업장 트럭을 타고 창고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착해서 주차를 이제 하려는데,


한순간이었다... 정말 한순간.


어젠 술도 안 마셨는데.. 주말 동안 열심히 논다고 잠을 잘 못자서였나..

다 와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엑셀을 세게 밟아버린 것이다.

조수석 바닥으로 날아간 휴대폰을 주을 새도 없이 후진, 주차를 하고 차를 확인했다.


- 제발.. 제발..


제발은 무슨 역시나 좌측 범퍼와 좌측 사이드 미러가 박살 나 있었다.

뽑은 지 얼마 안 된 트럭인데.. 푸바오 건데...


우는 심정으로 다음은 창고 안을 확인했다.


우리는 건물주의 창고에 세를 얻어 일부분을 같이 쓰고 있다.

마침 들이받았던 출입문 쪽에는 건물주의 상품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이렇다.

남의 물건 다 때려 뿌숨


미닫이로 여는 출입문은 밖으로 휘어져버려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일단 내려가서 푸바오에게 무릎 꿇고 할복하기 전, 먼저 건물주를 찾아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근처에 있어서 이 비극을 빠르게 알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이 아저씨도 자기 차로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해서 창고 측면을 들이받은 적이 있다.

그때 박은 위치는 우리 물건들이 있던 곳이라

비보를 접하고는 나도 정리를 하러 올라왔었다.


건물주는 손해가 얼마나 났는지 알려주면 변상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씁쓸한 푸바오는 괜찮다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당시엔 속으로 건물주를 욕하고 비웃었다.

'아니, 브레이크랑 엑셀을 헷갈리는 멍청이가 어딨어. 그것도 자기 건물을 그렇게?

이 아저씨 대낮부터 음주 운전한 거 아녀?'  



'이젠 그게 나예요. 그 멍청이.'




건물주와 나는 먼저 밖으로 튕겨버린 문을 고쳐보려 했다.

그렇지만 둘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일단 작업장으로 내려가 쇠지렛대를 가져옴과 동시에 푸바오에게 이 참사를 알려야 했다.




- 저.. 사고 쳤어요. 브레이크랑 엑셀을.. 그러니까 박살이.. 문이.. 건물주가..


기물을 깎아내고 있던 푸바오는 놀란 나머지 이 추운 날 반팔만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현장을 확인한 푸바오는 어이가 없었는지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셋이 힘을 합치자 다행히 출입문은 제 기능을 찾았다.


- 일루 와! 커피나 한 잔 해!


건물주가 믹스 커피를 권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어쩌고 간에 일단 두 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

갑자기 일을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평소 꺼드럭대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던 건물주가 말했다.

문 잘 열리니까 됐다고, 본인도 박아봐서 아는데(ㅋㅋ) 그런 일이 살면서 또 생길 수도 있는 거라고 했다.

분명히 또 어떤 놈이 와서 박을 거라고 (ㅋㅋㅋㅋ) 다음은 푸바오 너 차례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곤 시간 날 때 내가 엎어놓은 상품들 정리나하고 가라고 했다.


왠지 맘에 안 드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우리 작업장 건물주니까 평소에 인사 잘하고

종종 커피 몇 번 얻어 마시며 대화를 나눴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푸바오도 건물주가 분명 아쉬운 소리 했을 사람인데 그냥 괜찮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고 했다.


푸바오는 처음엔 조치에 드는 비용을 월급에서 깔 거라고 했다.

나는 아휴 당연히 그러셔야죠..라고 답했다.


내 차도 고장 난 범퍼 못 고치고 있는데

하여간 이 눔의 인생은 돈이 술술이야.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카센터에서 돌아온 푸바오에게 물었다.


- 비용.. 얼마나 든데요..?


푸바오는 말했다.


- 됐어.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 마.


나는 '어떻게 그렇게 하냐, 불편해서 그렇게는 안된다.'라고 하니,


- 일하다가 그런 건데 뭘.. 그럼 앞으로 더 열심히 해.

그리고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야.


라며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다.

나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효.. 주변 어른들에게 마음의 빚이 생겼다. 뭐라도 사들고 찾아가야겠다.




사고는 나고 싶어서 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상의 한 부분에서 터진단다.

항상 나를 돌아보고, 의심하고, 안일한 생각을 훠이훠이 해야지..

이번에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돌멩이 이 멍청이야. 많이 놀랐지?

그래, 안 다쳤으면 됐어. 너의 그 엑셀레이터로 또 많은 걸 배운 하루였잖아.

얼른 편히 쉬고 내일은 총명하게 하루 보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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