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몽골 여행기 - 1일차
노닐다 : (동사) 한가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여행기는 특별 편이니 앞으로는 제목을 바꿔서 써야겠다.
벌써부터 그리워진 그때의 순간들을 꼭. 꼭. 씹어먹기 위한 나의 여행 일기.
들어가-보자고.
#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Ojrf1U_j9Eo&t=1578s
<(playlist) 여름과 초록 그리고 낙하, 가사 없는 음악 @All was well>
1일 차 [출국, 붉은 영웅에게로 가는 길]
드디어 그날에 도착했다.
지난해 12월 결정된 여행을 위해 모인 여행자들.
우리는 경기 북부에 위치한 본가에 모였다. 내 차를 이용해 다 같이 인천 공항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
다들 퇴근 후 모인 터라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새벽 3시 20분.
걱정이 많은 탓인지, 여행의 설렘 덕인지. 곧장 눈이 떠진다.
이륙 예정시간은 아침 8시. 본가에서 인천 공항까지 거리가 좀 되기에 일찍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좀비 소리를 내며 일어난 내 기척에 거실에서 자던 녀석들도 몸을 일으킨다.
이 새벽에 참,,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는 어이가 없는지 씩 웃는다.
이번 몽골 여행 동행자들은 내 친동생과 작은 집 자매. 나까지 총 4명이다 (우리 집은 1남 1녀, 작은 집은 2녀다.)
그간 내 동생은 그녀들과 종종 만나고 있었다. 반면에 내 삶은 뭐가 그리 팍팍했는지.. 한참을 그녀들과 소원하게 지내왔다.
무관심의 시간은 10년을 주욱 흘러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는 나. 장남이어서 그런 걸까?
그 깨달음의 부싯돌은 이제라도 가족 구성원의 화합에 일조해야 한다는 압박감, 책임감이라는 작은 불꽃을 틔웠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뭐.. 그런 거다.
일단 또래 동생들과 먼저 가족애를 향한 물꼬를 트자!
(+ 언젠간 나도 몽골에 가고 싶기도 했고.)
공항에 도착해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래서 뭐든 일찍 일찍 다녀야 하나보다.
칭기즈칸 공항으로 향하는 기체 안에서는 몽골 어머님이 내 옆자리 통로 측에 앉으셨는데, 심심하셨는지 내게 이것저것 묻는다.
다행히도(?) 말은 통하지 않았다. 대신 궁금해하시던 영화 보는 법을 알려드리고,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는지 알려드렸다.
나는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잠을 못 자는 왕자님(?)이라, 세 시간 비행 내내 도를 닦았다.
당연히 초주검이 된 채로 다가온 착륙 10분 전. 스윽 창 밖을 내려다보니,
어응?? 이건 뭐.... 화성인가..? (4월의 몽골은 늦겨울이라 푸릇함이 부족하다.) 오, 저-- 멀리엔 눈 덮인 산이 보여..!
착륙 직전까지 반 강제로 라포를 형성한(..ㅋㅋ) 몽골 어머님과 사이좋은 모자 역할극을 하며 창 밖을 구경했다.
비행기에서 나와 걸으니 바깥에는 몽골 국기와 태극기가 같이 휘날리고 있다.
무슨 항공 기술 제휴라도 한 건지..? 벌써부터 친근함이 앞선다
(훗날 가이드 이모에게 물어보니 입국 당일에 한국 귀빈 방문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견..)
입국 심사대에 섰다. 내게 어디서 묵을 건지 묻는다. 울란바타르에 잡은 숙소를 보여준다. 그리곤 말한다.
내 뒤에 여자애들. 패밀리. 다 같은 숙소.
심사관이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너네 누가 봐도 가족 같네.
그렇게 심사는 휘리릭 끝났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가이드님을 찾는다. 이윽고 우리 투어사 이름이 적힌 종이가 보인다.
종이를 들고 있는 빨간 가죽 재킷의 여인. 오우 강렬하시네.
다행히(?) 5일간의 여정을 함께 할 가이드님은 아니고 우리를 수도로 데려다줄 픽업 직원이라고 하신다.
그녀가 말한다. 잉글리시 오케이? 예아쓰, 낫 프라블럼! (무슨 자신감?)
이곳은 해발 1300m가 넘는 고지대. 격한 환영 인사 같은 몽골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처음 탑승한 차량은 푸르공이 아닌 일제 SUV였다. 뭐, 승차감 좋네.
몽골 음악을 들으며 이제 막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도로 우측 편의 거대 광고판에 한글이 보인다.
'포장 이사는 역시----'. 그 뒤엔 '당신의 법률문제, 단 한 번의 ---' 법조계 어플 광고 같다.
대한민국 15배 크기의 땅이지만 350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만 그 절반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 그곳의 초입에 닿았다. 시내는 과밀된 인구와 차량으로 인한 대기 오염이 확실히 심각했다. (숙소에서 환기를 시킬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 운전하기 증말 빡쌔다. 차선 변경을 할 때 깜빡이를 켜는 차가 없이 (우리 픽업 기사님도 마찬가지) 일단 들이댄다.
이어지는 익숙한 간판들. 버거킹, KFC, 숯불구이... CU... GS25. 그래, 이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에???? '권구성 순대국밥'은 뭐야 정말 ㅋㅋㅋ
울란바타르에 잡아둔 에어비앤비까지 약 한 시간이 걸렸다. 시내에서 많이 막혔기 때문.
그래도 '과거 동구권 + 한국 신도시 + 유목민 풍경'이 섞인 도시의 모습을 보는 건 꽤 재밌었다.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못했음에도 처음 보는 낯선 떨림과 기대감 덕에 잠이 오지 않더라.
픽업 해준 붉은 가죽 이모와 작별인사를 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쓰는 호스트를 만나 숙소를 안내받았다.
몽골에 오면 많이들 찾는다는 '국영 백화점'. 그 바로 옆에 있던 우리 숙소는 쾌적했다. 6층이었는데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다만 마트에서 바리바리 사들고 다시 돌아왔을 때 한창 수리 중인 엘리베이터를 보고 잠시 식겁하긴 했다!)
오후 두 시 정도 되었을까? 우리는 행낭을 다시 꾸려서 밖으로 나갔다.
일단 밥부터 먹고 관광을 시작하기로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시내를 들르지 않는 일정이기에 오늘 기념품들도 꼭 사야 했다.
한창 식당으로 향하고 있는데, 호스트가 메시지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해서 그때부터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녔다.
친동생은 기어코 가방을 뒤로 메고 다니길래 "얌마 가방 털려. 조심해."라고 했더니 본인은 달리 털어갈 것이 없으니 괜찮다고 한다.
젠장, 시내에서 뒤를 지켜주느라 혼났다.
몽골에서 처음 들어간 식당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샤부샤부집이었다. 예상외로 우리가 갔을 때는 현지인들 밖에 없었다. 아무튼 보장된 맛집은 맞구먼.
꽤나 격식 있어 보이는 식당. 일단 자리에 앉아 몽골 맥주를 두 잔 시킨다.
'보르기오'와 '골든고비'라고 한다. (아, 잔이 너무 이쁘다.) 맛은 마지막에 작성할 일기에 몰아서 적을 예정.
여기는 1인 샤부샤부집으로, 개별적으로 취향에 맞게 육수를 고르고 소와 양고기 4인 세트로 주문했다.
아, 추가로 말고기도 시켰다. 궁금해서 시켜봤는데 딱히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신선해서 그런가 그냥 소고기 먹는 느낌이었다. 추가로 시킨 새우 완자는 아주 맛있었다.
세트에 포함된 우설 볶음에 들어있는 피망과 할라피뇨 절임반찬을 함께 먹으니 느끼함이 잡혀서 그리 어려운 식사는 아니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계산대에 서니 우리 돈으로 8~9만 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럭저럭 괜찮은 우리나라 식당에서 나오는 정도네. 건대 하이디라오가 더 비싸겠어.
감사하게도 여행 기간 동안 함께 먹는 것들은 친가대표로 둘째 고모가 전달해 준 30만 원을 사용했다.
조카들이 어울리는 것을 보고 여비로 쓰라며 주신 건데, 우리의 단합을 지지받는 느낌이라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고모..!
소화시킬 겸 좀 걷기로 했다. 어디를 가볼까? 난 박물관 좋아하는데. 너도? 응. 오키, 가자 가자.
칭기즈칸 박물관이 시내에서 가장 잘 되어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걷는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
뚜벅뚜벅 박물관에 도착하니 입장이 마감되었단다. 에이, 요 검은 문 멋있는데 사진이나 찍고 가자.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일단 저 밑으로 내려가보자.
사람들이 어떤 건물 입구에 꽤 많이 모여서 시위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도 보인다. 역시 몽골은 민주주의 국가구나.
내려가다 발견한 CU에 들어가 본다. 한국 식품과 그 외 상품 비율이 5:5 정도 되는 것 같다. 재밌네. 콜라나 하나 사서 나가자.
조금 더 내려가니 칭기즈칸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동상이 보인다. 반대편에는 웬 청년이 말 위에서 손을 들고 있다.
검색해 보니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이끈 '수흐바타르'라는 인물이란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따 지어진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는 '붉은 + 영웅'이라는 뜻이라고.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의 사명을 외면한 듯, 결핵으로 인해 고작 30살의 나이로 요절했다고 한다.
강한 인상을 남긴 덕일까, 당시 몽골을 공산 국가로 만들었지만, 민주화된 현재에도 독립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는 수흐바타르 광장이었고, 맞은편은 국회의사당이었다..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돌아다니는데, 필수 관광지에 온 느낌이라 더 흥이 난다.
광장에서는 많은 몽골 젊은이들이 빙 둘러앉아 공 놀이를 한다. 참 순수해 보인다. 마치 대학 시절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풍경이랄까? (예?)
딱히 공원이랄 곳이 없는 환경이어서 그런가 봐. 울란바타르의 심장에서 우리도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조금 더 걸으니 대형 천막 건물에서 소란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공연이라도 하는 걸까?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알까기를 하듯 뭔가를 날려 맞추는 경기를 하고 있다.
하여간 예상치 못한 경험은 도파민이 쏟아진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잘 설명된 영상으로써 기억을 공유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QfkZOmjdUTI
작고 네모난 무언가로, 양 뼈로 만든 '샤가이'를 맞추는 '샤가인 토이롬'이라는 경기란다.
몽골인들에게는 놀이 이상의 가치를 가진 문화라고 하는데, 세계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타자가 투척물을 날리기 직전에 주변에 빙 둘러앉은 선수들이 경쟁자를 견제를 하기 위한 것인지, 응원을 하는 것인지 야유 비슷한 느낌의 소리를 지른다. (내가 생각할 땐 전자가 맞는 것 같은데ㅋㅋㅋ 20대 때 친구들과 당구 치며 서로를 견제를 하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오더라.)
경기가 흥미로워서 계속 구경하고 싶었지만 동생들은 그 분위기가 무서웠는지 나가자고 보챘다.
다음에 올 때는 나도 한 번 샤가이를 맞춰보고 싶네.
어버이날도 곧 다가오겠다 부모님 선물을 사기 위해 몽골의 유명브랜드 '고비 캐시미어'로 향했다.
괜찮아 보이는 상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생활 한복만 입고 다니길 원할 정도로 패션에 워낙 관심이 없는 나도 여기가 질 좋고 가격 괜찮은 건 알겠더라.
다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아버지는 가죽 장갑 한 짝, 어머니는 짧은 목도리 하나로 때워야 하는 내가 참 미웠다.
모자도 더 사고 카디건도 하나 더 사가고 싶었는데. 뭐.. 어쩌겠나.. 동생들 몰래 머리나 벅벅 긁을 수밖에.
부모님 선물을 다 고르고 나가려는데 친동생이 형광빛의 비니를 써본다. 참.. 너무 잘 어울린다. 친척 동생들도 찰떡이라며 칭찬한다.
"야, 이렇게 잘 어울리는 건 사야지! 내가 사줄게 그거 너 해."
우울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살림살이가 나아져서 부모님과 같이 몽골 여행을 올 바로 그때는 내가 고비 다 턴다! 딱 대라!
마지막으론 국영 백화점에 있는 마트에 들러 몽골 1일 차를 기념하기 위한 과자와 술을 조금 샀다.
저녁은 어쩌지 싶다가 계산대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피자집에서 피자와 핫윙 몇 조각을 사가기로 했다.
우리 넷은 피곤에 절어있었지만 숙소 거실에 둘러앉아 그간 살아온 이야기와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네. 이젠 진짜 자자. (약 21 시간 째 깨어있는 중..)
내일은 투어사의 기사님과 가이드님을 만나 푸르공을 타고 본격적인 몽골을 느끼러 간다.
제발 좋은 사람들이기를 바라며.
두근두근.
줄이고 줄였다고 생각했는데도 분량이 그만.. 폭발해 버렸다.
6일 차까지 한 편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몽골 여행이 좋았다는 것이겠지요..)
2일 차로 곧 돌아옵니다.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