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몽골 여행기 - 2일 차
2일 차 [낙타와 사막, 그리고 첫 게르]
울란바타르의 태양은 한국의 내 방에서보다 밝았다.
눈 감았다 떴는데 바로 아침인 사실에 놀랐지만 다행히 몸 상태는 훌륭했다.
오늘부터 진짜 여행 시작인데, 방전될 수야 없지. 암!
#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0ylGOPTcZkM
<PLAYLIST | 그 시절의 여름 @yunzizi 윤지지>
몽골은 국가 특성상 여행지 간의 거리가 멀고, 이동 경로 상 비포장 도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는 말 그대로 야생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행사를 통해 현지 가이드님과 기사님, 이 두 사람과 동행한다.
그렇기에 가이드님의 센스와 기사님의 실력, 그들과 여행자의 궁합이 몽골 투어 여행의 최 중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의 청년들.
첫 대면부터 여행사 직원들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약속된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짐을 챙겨 나갔다.
간밤에 수리가 완료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출입문을 여니 웬 하얀색의 푸르공이 보인다. 벌써 오신겨?
그리고 보이는 반삭 머리의 아저씨 한 분.
눈이 아래로 축 처져있어 기운은 온화한데, 몽골인 답게 체격이 다부지다.
나는 묻는다. "(여행사를 말하며) 아 유 쥬라이버?" 그는 밝게 웃는다.
"생 토슬라레!"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간 밤에 공부한 몽골 예절대로 악수를 나눴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우리 캐리어를 실어주고 나서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여준다.
'택배는 몽골몽골'?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예전에 유튜브에서 어느 경치 죽이는 곳에서 멤버들이 택배를 열어보면서 눈물 흘리는 예능을 스치듯 봤었는데, 그게 바로 몽골에서 촬영한 이 프로그램 영상이었나 보다.
(뿐만 아니라 이 분은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도 출연한 베테랑 기사님이라고. 앞으로 몽골이 너무나도 그리워지면 이 프로그램들을 정주행 해야겠다.)
우연히도 그 프로그램 속 담당 기사님이 우리 기사님으로 배정된 것이다...! (18살 때부터 운전 일을 시작해서 벌써 30년이 넘는 경력이 쌓인 기사님. 이 분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매일매일 느꼈다. 그의 활약, 기대하시라.)
이윽고 가이드님도 등장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쓰는 그녀는 차분한 성격을 발휘하며 이번 여정 내내 우리를 편하게 해 주었다.
2001년부터 8년 정도 한국에서 일하셨고, 몽골에 돌아와 가이드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13살 아이의 엄마라고.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초원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차를 타고 시외로 나가는 동안 오늘의 일정과 본인들 소개를 해주셨는데
기사님의 이름은 나나(가명), 가이드님은 세리(가명)였다.
가이드님과 내 동생의 이름이 비슷했기에 우리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어거지로 자매 관계를 만들었다. ㅋㅋㅋ (다행히 좋아하셨다.)
울란바타르를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 아침도 먹을 겸 몽골의 국민 마트인 'NOMIN 마트'에 들렀다.
저녁에 숙소에서 먹을 술과 간식거리들을 사고, 나나 기사님과 세리 가이드님께 드릴 알로에 음료도 두 개 샀다.
계산을 마치고 마트에 있는 작은 푸드 코트에서 아침을 먹었다. 거기엔 김밥도 팔고 떡볶이, 닭강정도 팔더라. 그렇지만 우리는 현지식을 원했다.
우리는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보쯔(찐만두)와 삐어러적(간 안 된 밀가루 튀김?), 수테차(양으로 고아낸 차..라고 해야 하나?)를 먹었다.
아침으로 참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트 밖으로 나온 우리 입 안에서는 양들이 뛰어놀았다.
이때 첫째 사촌 동생이 가져온 민트 알약이 큰 힘을 발휘했다.
도시에서 빠져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어나서 결코 본적 없는 길고 긴 도로가 이어졌다.
턱 트인 초원과 하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진 구름의 파도.. 어찌 보면 미국 서부 같기도 하고 말야. (역시 가보고 싶은 곳.)
수도를 제외하고는 차량 이동이 많지 않기에 몽골의 도로는 웬만하면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 차가 느리게 가면 자연스럽게 역주행으로 추월한다.
불편할까 걱정 많았던 푸르공 안은 생각보다 편했다. 6인승 차량을 4명이 타서 그런 걸까?
목적지까지 200km를 넘게 이동해야 했기에 차에서 웬만해선 잠을 못 자는 나도 스륵 잠이 들었다.
갑자기 차가 세워졌다. 눈앞에 보이는 수 십 마리의 양과 염소들.
우리나라에서 이런 관경을 보려면 어디쯤 가야 할까? 대관령에나 가야 볼 수 있을까?
가이드님이 내려서 구경하고 가잖다. 우와,,, 감탄하며 밖으로 나선다.
나는 녀석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뛰었다.
녀석들은 마늘 냄새나는 수상한 남자를 피해 부리나케 도망갔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뻐엉 하고 풀리는 기분이다. 이 기분을 느끼려고 그렇게나 초원을 달리고 싶었나 보다.
가쁜 숨을 내쉬고 멈춰 서서 도로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저- 멀리엔 눈 덮인 산맥이 보인다.
척박함, 공허함이 느껴지다가 이내 왠지 모를 풍족함이 가슴에 담긴다.
이건 뭐 현실인지 게임 그래픽인지 헷갈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우와.. 우와..'
(차 안에서 보는 것과 땅에 발을 디뎌 보는 풍경은 무조건 다르다. 여행 가면 자주 내려서 자주 만끽하시기를..!)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몽골 2일 차의 목적지는 미니 사막이라고 불리는 '엘승 타사르해'.
드넓은 고비 사막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없는 터라 아쉬운 대로 수도에서 가까운 귀여운 사막을 코스에 넣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점점 이동하면서 보이지 않던 습지와 강이 보인다. 지형이 변함에 따라 식생이 변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몽골은 마치 거대한 지질 박물관 같다.
낙타 체험장소에 내려보니 이 정도면 사구가 아니라 사막이 맞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기껏해야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 정도를 경험해 본 나에게는 그랬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판초를 두른 우리는 앉아서 쉬고 있는 낙타들에게 다가갔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는 낙타에 올라타보니 생각보다 높이가 있다. 선험자들의 후기와는 다르게 냄새는 나지 않았다.
몽골의 젊은 친구들이 이끄는 낙타를 타고 15분 정도 모래 위를 걸었다. 형식적인 체험이었지만 그래도 낙타를 처음 타보는 거라 흥미로웠다. (후드득 떨어지는 그들의 배변 활동도 볼 수 있었...)
우리가 현장을 나갈 때쯤 아이들을 동반한 현지인들이 많이 와있던데, 그들에게도 낙타 타기는 이색 체험인 듯했다.
이번엔 모래 썰매를 타러 간단다. 한동안 말 그대로 오프로드를 달렸다.
썰매 장소로 보이는 곳에 내려 약간 걸었다. 푹푹 빠져야 정상인데 어제 비가 와서 걷기가 수월했다. (다행히도 여행 내내 날씨 운이 따랐다.)
모래 언덕에 낑낑대며 올라가 보니 이야,, 이것 또한 장관이다. 바람이 매섭게 불지만 기분 좋다.
썰매에 앉아 내려가기 직전. 와, 이거 꽤나 스릴 있다.
우리는 모래 언덕에서 썰매를 두세 번 정도 탔다. 우리는 초등학생이 된 듯 연신 깔깔 거리며 웃었다.
세리 가이드님은 타고 싶은 만큼 타도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아휴 힘들어)
이날 바지 주머니에 들어간 모래는 털어도 털어도 계속 나와서 마지막 날까지 나와 함께 했다는.. ㅋㅋ
모래 언덕에서 나온 뒤엔 10km 정도 비포장 도로를 달려 드디어 첫 숙소에 도착했다.
게르 캠프의 첫인상은 불편하겠다는 느낌보다는 포근한 둥지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종일 밖에서 놀다 와서 그런가.
캠프 내의 남자 공용 화장실이 고장 나있긴 했지만 숙박하는 데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일하는 직원분들도 친절했다.
게르 입구가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크기라 지나다니면서 자꾸 머리를 박는다.
한 번은 친동생이 밖으로 나가다가 바보 같이 헤딩을 해서 무려 천장을 지지하던 목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었는데
그때 난 머리 혹이 마지막 날까지 남아있었다. (돌이켜보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모두들 얼마나 배꼽 잡고 웃었던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차 안에서 이동할 때 쓰던 목베개를 문쪽에 걸어두어 부상을 방지했다.
그걸 치우면 귀신 같이 누군가는(나를 포함해서) 머리를 박았으니 아주 효과적인 해결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르에서 자게 된다면 설치해 보기를 추천드린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확실히 부실한 느낌이 든다.
귀하디 귀한 채소 샐러드가 조금 나오고 메인메뉴는 소 불고기 비슷한 것에 으깬 감자 조금, 그리고 밥. 홍차나 수테차를 곁들이면 끝이다.
고기 외엔 재료가 귀해서 그런가. 내가 당장 만들어도 이 요리를 따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더 맛있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ㅋㅋ...)
하긴 유목 생활양식은 미식이 발전하기 적합하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선지 다른 숙소에서도 메뉴는 비슷비슷했고, 요리사의 손맛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었다.
이래서 라면이며 뭐며 마트에서 잔뜩 사 오는구나..
우리나라 정도면 정말 미식의 천국이구나.. 감사하다.. 감사해..
5월 초까지 기온이 영하로도 떨어지기에 게르 가운데에는 난방을 위한 화목 난로가 있다. 장작을 때면 게르 안은 금방 따뜻해진다.
아니!! 너무 덥더라. 밖은 분명 0도 언저리인데 게르 구조상 과학적인 원리가 있는 건지 열기가 밖으로 잘 빠지지도 않는다.
어느 숙소를 가던지 캠프 직원이 잠들기 전에 불을 더 때워주기 위해 오는데, 내가 직접 불 조절을 하겠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 같이 웃음 지으며 난로 안에 석탄을 가득 넣어준다.
동생들 감기 걸리지 않도록 여행 내내 내가 불을 보며 난로 가까이에 있는 침대를 썼었는데
난방 악마들과의 소통 실패는 처참할 수밖에. 3일 차엔 망할 더위에 지쳐 복사열을 차단하기 위해 천장에 이불을 걸어놓고 잤다.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다지만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모든 일정이 끝난 캠프의 저녁.
우리는 노을 지는 초원의 풍경과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기대했지만
당최 날이 흐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간간이 보이던 초승달마저 구름에 가려졌을 정도이니.
바깥 구경을 포기한 탓에 자칫 늘어질 수 있는 게르의 밤을 채울 뭔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혹시 몰라 한국에서 가져온 보드게임을 꺼냈다.
게임 이름이 '타코, 캣, 고트, 치즈, 피자'였나? 이때도 한참을 웃으며 손이 쌔뻘게질 때까지 놀았다.
게르 안을 가득 채운 웃음과 함께 몽골에서의 두 번째 밤이 흘러간다.
3일 차 예고 [온천, 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