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이에게 쓰는 편지

003

by 한량돌

안녕 도이야.

오늘 우리나라 남자 축구팀이 결국 일본한테 1대 0으로 졌어.

열이 받아서 막걸리를 두 통 주유 했지.

아니 사실 이젠 열도 안 받아. 이제 일본한텐 그냥 지는 게 당연한 것 같아. 월드컵 진출 하지나 말지.



오늘 활터에 갔게 못 갔게?

물론 갔지!


놀랍게도 여섯 시쯤 눈 떠서는 단말마의 신음을 토하고서

음.. 두 시간 더 꿀잠을 잤어. 진짜 달달 했어. ㅋㅋㅋ

나 좀 더 일찍 자야 하나 봐. 4~5시간 자고는 못 사는 사람이니까.


암튼 원래 계획보다 늦어졌지만 일단 활터로 갔지.

자세 연습을 하는 중에 사우 님들이 같이 쏴보자고 하셔서 내 화살을 처음으로 날려보게 됐어.


결과는?

총 10발 중에 한 발 맞췄다!

처음 사대에 올라와서 쏜 사람 중, 한 발이라도 맞춘 사람은 내가 처음일거래. 믿거나 말거나 ㅋㅋ

게다가 과녁을 못 맞히는 이유도 명확히 알 수 있었어! (이게 진짜 중요한 거지.)

왼 손이 끝까지 활을 잡아주지 못해서 살이 자꾸 우측으로 날아가더라구. 엄지도 자꾸 터지고.


너도 활을 배우면서 느꼈을 과정이었을까?

나는 생존을 위해서 쏘고 있진 않으니까 더딘 내 속도를 이해해 줘.

지금 여긴 먹고살기 위해서 활을 쏘는 사람은 극히 드문 세상이야.

아무튼 너와 동기화 되어가는 느낌이라 뿌듯하고 재밌네.



활을 다 쏘고 일터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청소 담당에게 톡이 왔어.

몸이 아파서 못 나오겠다네..? 어쩌겠어. 그러라고 했지.

프리랜서라 그런가 일터에 대한 충성도가 많이 떨어져.

뭐.. 나라도 쉽게 생각하겠다.


어쩔 수 없이 펜션 주인 어머님에게 청소를 부탁했어.

청소 후에 내가 상태를 더 꼼꼼히 체크해야 하지만 방법이 없어. 오늘도 바쁠 예정이라.

여기 진짜 주인인 사람한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맞다고 하나하나 바로 잡아주기도 부담스럽네.


그렇다손 치더라도 막상 객실에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나오는지..

하여간 항상 중간 관리자가 멍고생이라니까.


오늘 또 단체 손님들은 예상보다 일찍 와서는 입실시켜달라고 아우성이었어.

그래서 평소보다 입실 체크하는데 손이 더 바빠졌지.


이런 일 저런 일 벌어질 수 있는 거긴 한데..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이제 3개월 차인데 어찌 버티나 싶어.

오전 내내 비는 왜 이렇게 오는지. 옷이 흠뻑 젖고 나서야 당장 바쁜 게 끝이 났어.


너한테 이르고 싶은 게 더 많지만 오늘은 그만할래.

너라고 뭐 삶이 쉽겠니.



내일은 활터에 못 나갈 것 같아. 도저히 계산이 안 나와.

여기는 시골 그 자체고, 아침 일찍부터 읍내에 나가서 장을 보고 와야 할 것 같아.

마침 활터와 읍내의 방향이 정반대라, 7시에 나가서 움직여야 펜션 스케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그 정도로 성실하지는 못 해. 차라리 좀 더 늦게 자기로 하고 '눈물을 마시는 새' 10페이지를 더 보고 자는 게 낫지.


머슴이면 일찍 일어나서 마당이나 쓸지 무슨 장을 보냐고?

내가 숨 쉬는 이 세상은 숙박업 그 자체로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기 힘든 구조거든.

그래서 이것저것 부가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윤을 창출해.

여기만 해도 찜질방 세트니, 항아리 바비큐니, 무한 고기 뷔페니 하는 것들을 하고 있어.

흔히 말하는 F&B라고 하는 것들이지.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요즘 사람들은 놀러 와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나 봐.

네가 사는 그 세상만큼이나 삶이 치열해서 그런가.


아이러니하게도 배는 부르지만 정신은 배고픈 그런 시대 같아. 물론.. 나도 그런 것 같고.

배부른 소리지만 차라리 네가 있는 그 세상에 던져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그래서 너의 이야기를 동경하는 걸지도 몰라.


아, 얼른 너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얼마만큼의 편지를 네게 남겨야 너의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길까?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걸까?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오욕을 버리면 바로 착수할 수 있을까?


요즘은 그냥 '글쓰기'에 목숨이 걸려있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 일 줄 짐작도 못하면서 말이야.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런가.


하음.. 너무 졸리다.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할게.


보고 싶다 도이야.

내일도 밥 굶지 말구 잘 지내.

살아있다면 너나 나나 어떻게든 즐겁지 않겠니.


잘 자!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도이에게 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