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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오네. 다음 주엔 내내 비가 온대.
아마 2차 장마가 시작되는가 봐. 다음 주엔 야외 작업 좀 하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말이야.
기원 후 2025년, 한국이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개하기 위해서는 아니야.
아직은 그닥.. 재미도 없거든.
그냥..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편지를 쓰려고 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브런치에
개인사를 일부 공개하는 일기장을 올리게 되면서
응원의 마음일까. 진짜 재미있으셨던 걸까.
한 50편쯤 올리니까 내 일기를 기다려주는 분들이 생겼어.
그리고 5~6년을 구상만 했던 도이, 너의 이야기도 시작하게 되었고.
그런데 젠장, 도자기 관두고 나면 글이 좀 더 잘 쓰일 줄 알았는데 말야.
숙박업소 상주 지배인(머슴)을 시작하니까 내 시간을 확보한다는 게 당최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출퇴근 시간이 사라졌지만, 정해진 하루 근무시간도 없어졌어.
일과 쉼의 스위치를 잘 조절하라지만 그게 뭐 쉽냐구.
그렇다고 미라클 모닝처럼 5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데.
나 잠 많은 거 잊었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너의 본체인데!
미안, 그만할게 ㅋㅋㅋ
응? 브런치며, 스위치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괜찮아. 나도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가야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도 잘 모르고 네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우리 편지는 그냥 그런 거야.
아무튼 뜬금없이 네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뭔지로 돌아가서!
작년 여름 즈음, 차분하게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던 그 순간들과
작고 귀여운 내 결과물들을 영영 놓아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야.
'쓰자병'이 오랜만에 도진거지. 지금 쓰지 않으면 모든 게 다 휘발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
기분은 좋아.
바쁘고 어쩌고 다 제쳐놓고(아니 사실할 거 다 했어.)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거든.
이제 저녁 6시거든? 원래 이 시간이면 여기저기서 숯불 피워달라고 전화가 오는데 오늘은 조용하네.
비가 와서 그런가 투숙객들이 차-분해. 감사하지 뭐.
아무튼 간에.. 기특 꾸준하게 올려왔던 내 일기장, 그리고 내 아픈 손가락인 도이, 너의 이야기를 짬뽕해서
'도이에게 쓰는 편지'를 쓸 거야. 이거 완전 도른 생각 아니냐고 ㅋㅋㅋㅋ
아무것도 못 쓸 바에야 둘 다 쪼끔씩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뭐라도 되지 않겠어?
내 글쓰기의 온도가 섭씨 100도가 되어 발발 끓을 때까지만.. 이렇게 종종 네게 편지를 쓰려고 해.
(내가 딱히 어디 하소연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네가 다 받아줘야 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러면 너의 세상도 반드시 펼쳐줄게.
지금은 고구려 어디쯤에 있니?
책성에는 무사히 잘 도착했을까? 오늘도 역시 말똥 치우고 있는 걸까?
아무쪼록 한여름 감기 조심하고.. 밥 굶지 말고!
조만간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