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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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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돌

안녕 도이야!


오늘도 편지를 쓴다.

오늘은 꼭 연재하던 일기부터 쓰고자 했는데 참. 도저히 체력이 안되더라.

나름 일찍 하루가 끝났는데도 말야. (4시 반에 샤워를 했으니, 어쭈 돌멩이 지배인 많이 컸다?)


징징거리는 일기가 싫어서 급작스럽게 여행기로 대체했던 시리즈도 50% 쓰고 멈춰버렸고

동생들과 지인들이 기다리는 몽골 영상도 오늘은 손을 대지 못할 것 같아.

브런치 켜는 것, 프리미어 켜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드니.

여행했던 기억이 점점 옅어져 가. 이러면 안 되는데.


너라도 그냥.. 오늘도 잘 해냈다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에 이렇게 또 편지를 쓰나 봐.



오늘은 퇴실 청소가 6개실이 있었어.

청소팀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들이 객실 모든 곳의 컨디션을 원상 복구하지는 않거든.

일하는 곳이 작업 동선이 먼 데다가, 각 객실 외부엔 너른 잔디 정원과 바비큐장이 있어선지 할 일이 참 많아.

그래서 나나 다른 청소 지원 인력이 하는 업무가 따로 있어.

암튼 오늘도 입실 손님들을 맞기 전까지 도르륵 도르륵 뒹굴렀다는 말이지.


그게 끝나고 나서는 얼마 전에 설치한 수영장 청소를 했어.

청소라기보다는 벌레탕이 된 수영장의 건더기들을 제거하는 일이지.

KakaoTalk_20250714_232454528.jpg 살려줘

오후 3시까지 밥도 못 먹으면서 열심히 물에 빠진 불운한 녀석들을 걷어가는데,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돌연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하더라고.

한숨, 두 숨을 쉬고는 오늘 누가 수영장 들어갈 생각이나 하겠나.. 싶어, 벌레 건지기용 그물을 던져버렸어.(아니, 그냥 잘 세워 뒀어.)

시끄럽게 돌아가던 여과기 플러그도 빼버리고.

수영장 그냥 폐장시켰다고 하니까 펜션 주인 어머님이 잘했다고 하더라.


아, 어머님 얘기도 종종 들려줄게. 내 밥 챙겨주는 사람이라서 자주 같이 시간을 보내거든.

상당히 토속적(?)으로 요리를 하셔서 초딩 입맛인 사람들은 어머님의 요리를 싫어하지만, 난 어머님 음식이 참 맛있더라.

엄마 음식 같기도 하고. 아마 두 분이 동향이라서 그렇게 느끼나 봐.

KakaoTalk_20250714_232454528_02.jpg 김치전이 조금 타긴 했지만 ㅋㅋ 잘 먹고살고 있어.
KakaoTalk_20250714_232454528_01.jpg 이게 뭔 줄 아니? 5년 된 복분자주에 냉장고에서 갓 꺼낸 카스를 섞는 사진이야. 부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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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꼭 7시에 일어날 거야. 주말엔 바빠서 엄두도 못 냈는데, 내일은 평일이니까 꼭 활터에 가고 싶어.

드디어 13만 원 주고 내 화살들을 장만했거든.

더디고 더디게 국궁을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어. 이제야 진짜로 활을 쏘는 사대에 오를 수 있게 됐단다.


처음에 활터를 찾아갔던 날, 생활 한복 입고 온 나를 보고 기대에 부풀던 선배님(아저씨들)들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드문드문 오는 나를 보는 시선이 갈수록 곱지가 않으시더라구.

팔에 문신이 가득해서 그런가. 일부러 잘 숨기고 다니긴 했는데ㅋㅋ 더워지니까 반팔을 입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아무튼 이건 내 피해망상이고, 좀 더 루틴 살려서 꼬박꼬박 쏘러 다녀야지.

KakaoTalk_20250714_232649338.jpg 엄지도 찢어지고 뺨도 터지고 팔도 터지면서 즐겁게 배우고 있다구


아, 얼마 전에 남의 화살로 처음 사대 위에서 살을 쏴봤는데, 나름 비슷한 곳에 화살이 모이더라구.

그 왜 있잖아. 처음 받은 총기로 영점 사격 할 때 탄착군이 한 곳으로 모이면 총 엄청 잘 쏘는 거라고.

그래, 나 원래 특등사수였어. 22살에 처음 K-2 쏠 때 20발 중에 19발 맞춘 사람이다?


엉? 총이 뭐냐고?

미안, 너 가야 사람이었지;;


암튼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활쏘기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나름의 취미를 가지고 배우고 있어. 기대해!

(다 너를 위한 거야!)



비가 주룩주룩 계속 오네.

내일은 좀 쉬고 싶다. (그렇지만 23명 단체 예약이 잡혀있어 젠장.)


여기 밖으로 나가야 스위치가 꺼질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밖으로 나돌만한 에너지가 없어.

아마 그간 쌓인 편집하지 못한 영상들, 못 다 쓴 일기들, 그리고 도이, 너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전이 있어야 밖으로 나돌 수 있을 것 같아.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자꾸 발목을 잡거든. 그러니까 내일은 술 먹지 말고 창작 활동을....


아, 내일 국가대표 남자 축구 경기가 있었지,, 동아시안컵이긴 한데, 무려 한일전이라고!

내일도 술 먹게 생겼네. (난 창작하기엔 글러먹은 놈인지도 모르겠다.)


얌마, 너도 곡주 적당히 마셔. 새파랗게 어린것이. 하슬이가 널 얼마나 걱정하는데.

하여간 내일도 밥 굶지 말고 해장 잘하고

조만간 또 편지 줄게!

그리고 내일 활터에서 얼마나 멋졌는지도 전해줄게.


잘 자라. ~_~


KakaoTalk_20250714_232945195.jpg 내가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참 므찌다 므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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