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끝 없이 밀려드는
부여에서의 n번째 회식을 멋들어지게 해내고 오전 내내 푸지게 잠을 잤다.
지난밤 위가 마구 늘어났는지 눈 뜨자마자 속이 허했다.
오늘은 느지막이 잡혀있는 스마트팜 견학 말고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
뭐라도 먹어야지. 근데 바나나는 먹기 싫고..
나는 높은 확률로 끼니때마다 뭘 먹고 싶은지가 번쩍 떠오른다.
오늘은 막국수가 땡긴다. 사실 냉면이 땡겼는데 먹으려면 고깃집 밖에 없더라,,
초췌한 몰골로 점심에 혼자 고깃집 가서 냉면 시키는 건 좀.
빠르게 레이더를 돌려본다. 다리 건너 규암에 평점 높은 막국수가 있다. 오케이.
# 함께하면 좋을 배경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50lIgktvD2U&list=RD50lIgktvD2U&start_radio=1
<락영 - 파도>
젠장.
문이 닫혀있다. 내년 3월까지 쉰단다.
아쉬운 대로 다른 막국수 집을 찾아본다.
여기.. 괜찮겠네. 먹고 소화시킬 겸 강변에서 산책도 하자.
3분 정도 더 이동했을까. 강변에 위치한 식당에 도착했다. 주차장도 넓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쪼륵 인사하고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으니 풍경이 턱 트여 기분이 호방해진다.
오래지 않아 주문한 막국수가 나왔다.
오, 맛있다. 육수가 꼴끔한 것이 진한 고기육수 같다.(다시단가..?)
코 박고 먹는데 기분 좋게 메밀 향이 감돈다.
찬으로 나온 열무김치도 상당하다. 욕심이 생겨 메뉴판을 다시 정독해 본다.
늘 그렇듯 돈까스도 하나 시키려다가 주방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는 조금 아니올시다..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잘 먹다가 생각에 잠긴다.
줄 서고 붐비는 정신없는 전국구 맛집보다
조용하면서도 적당한 선의 감동을 주는 노포를 선호하는 건 내 성격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사람도 너무 많은 타인에 치이면서 살면, 바쁘고 정신없으면 본인 매력 어필을 하기 어렵지 않나?
아마추어처럼 냉소적이게 쌀쌀맞아지기도 하고 말야.. 그래.. 다정함은 여유에서 나오는 거 아녀?
그려, 내가 식당을 운영한다면 손님들 줄 세우는 맛집으로 만들기보단
와준 사람들을 위해서 차분하게 식사 준비하고 정성껏 내온 음식을 전달하면서 사람들하고 눈 맞추는 사장이 됐으면 좋겠다.
근데 그것도 말이 좋지, 가게 월세도 못 내서 빌빌대면 그런 생각이 들기나 할까. 내 가족 부양할 수 있는 정도는 벌어야….
꿈 깨. 네 끼니나 잘 챙겨라.
네가 무슨 식당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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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룩한 속이 무색하게 음식을 싹 비우고 나왔다.
오늘도 부여는 날이 좋구만.
숨 쉬듯 익숙한 동작으로 이어폰을 귀에 건 뒤 강가 산책로로 향했다.
백마강에는 왠 새들이 물수제비를 하듯 수면 가까이 날다가 갑자기 박차고 휙 날아간다.
생긴 게 꼭 가마우지? 같은데. 별 걸 다 보여주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휙 불어온다. 이윽고 흘러드는 노래에 온몸의 털이 뼈쭉 선다.
분명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도 너무나 낯이 익다.
찾고 찾고 또 찾다가 결국 기억에서 잊힌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핸드폰을 켜고 앨범 아트를 본다. 뭔 컨셉이야 이거. 다음 노래로 또 다음 노래로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간다.
‘바람결.. 파도.. 서시.. 여름 달빛 아래서.. 뱃노래..’
뭐 하는 사람이지??? 아니 진짜 미치..ㄴ 거 아니냐고;;
앨범 아트와 보컬의 어색함이 약간은 느껴지는 걸 보니 AI 작품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탁월하지.
기성 가수들 목소리 따다가 커버곡 만드는 작품들이야 충분히 즐겨왔지만서도.. 벌써 이렇게나 세상이 달라졌구나..
하여간 여자 보컬 락밴드라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는 걸 봤을 때
나는 분명 전생에 노래 못 부르고 죽어서 한 맺힌 여자임이 틀림없다.
아무튼 다들 락영 님 작품 들어보세요. 시원하게.
https://www.youtube.com/@rockyeong_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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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안이 벙벙한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진정을 시켜야 했다.
차분히 앉아서 일기를 좀 써야겠다. 는 개풀,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이 시끄럽다. 노트북 속 작은 카톡 창 안에서 한참을 껄껄 거렸다.
몸의 모든 감각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문득 부여 온 이후로 너무 붕 떠있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건 아닌데.
감정의 중도를 지키자.. 평온함이 곧 나요, 내가 곧 평온함이니..
(아니 웃어도 뭐라 그러고 울어도 뭐라 그러고..)
그러다 벨소리가 울린다. 펜션 어머님이다.
올여름, 펜션에서 참 힘들었지만 모든 기억이 어렵기만 했던 건 아니다.
특히 매 끼니를 챙겨줬던 이모할머니 뻘 되는 이 사람과의 유대감이 소복소복 쌓여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부모님께도 연락 자주 안 하는 부료자인지라.. 펜션에서 나온 뒤에는 연락 한 번을 못 드렸었다.
그녀는 내가 잘 사는지 보고 싶어서 전화했단다. 최근에는 무릎이 안 좋아져서 인공 관절 수술을 하셨다고 했다.
끝으로는 김치 담가놨으니 시간 내서 가지러 와라, 술 좀 적당히 마셔라 ~~~~~ 나는 네, 네 하고 전화를 마쳤다.
마음이 무거워진 덕에 평온을 되찾았다.
부여 살이가 끝나면 어머님 뵈러 꼭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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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여 살이 체험 메뉴는 방울토마토 스마트팜 견학.
스마트팜.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궁금했는데 잘 됐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방울토마토 농장에 도착한 뒤 농부님의 간략한 소개를 듣고 나서 방토들이 있는 재배실?로 들어갔다.
수입산 배지를 사용해서 수경 재배하는 방식인데 흙이 없어서 그런지 확실히 깔끔한 느낌이 든다.
관리하기도 편해 보이고.
근데 좀 외계인 실험실 같기도 한 것이,,,,
농부님은 본격적으로 농장 설명을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에도 답해주셨다.
방울토마토는 과실이 나는 곁가지가 38줄기까지 뻗어나가고
눕혀보면 12m 정도로 성장한다고.. 워메..
설명이 끝난 뒤에는 편하게 맛보면서 한 팩씩 따가라고 하셨다.
방토 꼭지가 이렇게 생명력 넘치도록 싱그러웠구나.
마트에서 사 먹을 땐 몰랐는데. 신기하다.
이쪽으론 큰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요즘 농촌에서는 스마트팜 조성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희라숲으로 연행되어 가던 화요일 밤, 어느 곳을 지나다가 주변을 발갛게 물들인 스마트팜 하우스를 본 적이 있다.
작물의 생장 속도를 높이기 위해 특수 조명을 설치한 거라고 하는데 농부님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조명 설치비, 운영비 등 따져볼 게 많겠지. 광공해도 좀 있어 보이던데..
스마트팜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의견들도 있지만
1차 산업 대부분의 행태가 결국은 이런 식으로 변화되어 가겠지.
오늘도 새롭고 신기한 체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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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국수에 토마토까지 냠냠하니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도 소화가 덜 되었다.
홀로 나와 정림사지를 걷다가 읍내 동쪽에 자리한 금성산을 바라봤다.
왠지 오늘이 아니면 오르지 않을 것 같다.
마침 주황 하늘이 펼쳐질 시간이기도 하다. 놓칠 수 없지.
초행길이라 멀쩡한 등산로를 내버려 두고 무덤가를 해맸다. 이거 황혼은 둘째치고 저녁 시간에 늦겠는데..
조급한 마음에 슬리퍼 신은 채로 풀숲을 헤치다가 고냥이 마냥 능선을 타고 무작정 위로 달렸다.
야트막한 산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다행히도 부여의 하늘 교체식을 제 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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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하러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저녁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단체 식사에 밥을 새로 하느라 우리 테이블에는 때맞춰 밥이 오지 못 했다.
뭔가를 하다가 주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사장님이 밥을 푸고 계셨다.
온 김에 직접 가져가려고 서있다가 사장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닭도리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남..)
밥이 다 채워지고 내가 직접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고맙다며 나에겐 밥을 고봉으로 주셨다.
공깃밥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뭔가 허전하다.
.. 눈앞의 만찬을 두고 이럴 수는 없는 것..
부여 군민들과 예비 군민인 내 핏 속에 깊숙이 침투된 한산 모시 막걸리를 한 병 부탁드렸다.
할머니 사장님이 막걸리 남은 게 없다며 사러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아니 그럼 됐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할머님은 슈퍼 가까우니까 밥이나 먹고 있으라고 한다.
이래서 맛집 주인장과 라포를 쌓는 것은 맛집 식사 필수 과정.
하여간 부여에는 돈쭐내야하는 못된 식당들이 많단 말야. 할머님 돈 많이 벌어서 외식 자주 올게요♥
말도 안 되는 보끔탕에 말도 안 되는 막걸리를 한 잔 치고 나니
전날 먹었던 동네 술집의 똥집 튀김이 생각나서 일부 멤버들을 끌고 또 먹으러 갔다.
고놈 참 못된 삼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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