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닐고 싶어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58. 난 너무 행복해

by 한량돌

피곤에 절여진 상태라 취침 전 유튜브 시청 없이 단숨에 골아떨어졌다.

하여 오랜만에 상쾌한 기상을 했다.

오늘 일찍 길을 나서야 한다. 직업 체험이 예정되어 있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목욕재계를 하고는 휘릭 숙소를 나섰다.

??.. 날씨가 심상치 않다. 비바람이 부는 오늘의 부여는 좀 찹다.

돈 벌기 쉽지 않구먼.





# 함께하면 좋을 배경 음악

https://www.youtube.com/watch?v=63OtpnIW3ME&list=RD63OtpnIW3ME&start_radio=1

<50mang쏘망 - 【국악풍bgm】 가을걷이>





멤버들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로 각자의 직업 체험을 하러 출발하고

나도 약속 장소인 백제문화단지로 이동했다.

주차를 하고 역사문화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관람객도 몇 없다.

부여에 와서 외롭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백제에서 놀자 대표님은 서울에서 세미나 같은 것이 있어 조금 늦으신다고 했고

대신 문화단지에서 문화 체험 실무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나와 시간을 보내주시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덕에 역사문화관에 들어가 잠시 앉아서 쉬었다.

그러다 입구 쪽에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소소하게 구경이나 해볼까?


소소는 무슨.. 또 돈을 썼다. 두 가지를 슈킹 했는데,

오색의 약돌? 들은 집에서 주무시고 있는 스칸디아모스 화분(이 아니라 아크릴 감옥에 가까운)에 넣으려 하나 샀고

조만간 이사가 예정되어 있기에 현관에 걸 액막이 명태 나무 조각품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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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은 미신일 뿐이지만 과하지 않은 정도의 유난은 나를 아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귀엽잖아.


그러던 중에 일자리 체험 선생님이 오셨다.

기념품 가게 사장님과도 아는 사이였는지 셋이서 한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장님은 알고 보니 일본 분이었는데, 말씀을 하도 잘하셔서 전혀 몰랐다.

칸코쿠고가 죠즈 데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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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몸을 굴릴 시간.

올해의 행사가 모두 끝난 덕에 교보재를 정리하고 간단하게 현장 청소 정도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처음 한 것은 문화 단지 내에서 단체 체험을 할 때 입는 전통 복장을 정리하는 일.

세탁물 / 수선물로 나눠서 정리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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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끄만 천사들이 전통 옷을 입고 문화 단지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지어졌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아이들을 인솔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더 좋아하신다고.

음. 인정합니다. 짜릿하지요.


휘리릭 첫 번째 임무를 마치고 역사문화관에서 나와 문화 단지 안으로 이동했다.

이때 좋았던 것은 처음 홀로 이곳에 왔을 때랑은 다른 시선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는 것.

관계자들만 다닐 수 있는 통로로 다닌다거나, 직원의 눈으로 말아주는 문화 단지 해설이라던가.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지만.. 경험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달리함에 따라 감상은 얼마든지 풍부해지는구나.

몇 번을 들어도 조금씩 새롭게 들리는 노래, 몇 번을 보아도 조금씩 달리 보이는 영화를 느끼는 것 같다.


조큼 감격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올해 여름, 도시가 아닌 곳으로의 삶을 꿈 꾸며 ‘백제문화단지의 매표원이라도 좋겠소.’라는 흐릿한 다짐을

결국 이래 찍어 먹어보기라도 하는구나.


따뜻해지는 마음과 달리 날은 점점 흐리고 추워졌다.

끝으로 체험 건물에 가서 교보재들을 정리하고 가볍게 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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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았다. 다음 행사 시즌까지 잘 자렴.



노동을 갈무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선생님이 맛집이라며 데려가주신 곳.

관광지 앞이 뭐 얼마나 맛있겠나 싶었지만 이 정도 서비스와 맛이라면 재방문 의사 있다!

https://naver.me/F5DHpew7


우리는 짬뽕 칼국수와 돌솥비빔밥, 만두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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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칼은 반기(6개월)에 한 번쯤 생각날 맛이었고,

돌비는 근처에 있다가 돌비 생각이 나면 달려갈 맛이었다.

고기만두는 직접 빚으시는지 맛이 고급스럽고 실해서 만족스러웠다.


점심부터 양이 좀 많았는데, 어른 앞에서 음식 남기기 그래서 맛나게 때려 넣었더니 인간 탱탱볼이 된 것 같았다.

아무튼 노동 후 먹는 밥은 꿀맛이었고, 혼자가 아닌 둘이 먹어 행복한 식사였다.


-

‘이 집 커피가 제일 낫더라구.’ 암요. 가시지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대표님을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 안은 따뜻하고 향기로웠다. 부자 관계로 보이는 두 남자는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고 있다.

https://naver.me/GA8D5mPq


천장은 높았고, 조적으로 멋 낸 벽체는 포근했다. 앤틱 가구와 장식도 허튼 것이 없었다.

나도 침실을 제외하고는 ‘집 같지 않은 집’(대신 안락함은 1순위로..)처럼 이렇게 내 살 곳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백제에서 놀자 대표님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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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서울에서만 살던 분인데 처음 부여로 내려왔을 당시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촌 생활이 미웠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점차 부여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부여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으시단다.

대표님의 빛이 나는 눈을 보면 이젠 ‘명예 백제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


나도 거리낌 없이 두 분과 얘기를 나눴다.

저는 초기 한반도 역사를 다룬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고

욕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작업들로 삶을 채우고 싶은데

그동안 주변 환경을 잘 정돈하지 못해 억눌린 채로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러쿵저러쿵 굴러다니다가 만나게 된 부여가 너무 마음에 든다.

여기서라면 하고 싶은 것들을 차근히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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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이 폐교를 빌려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셨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워서 한숨을 땅이 꺼지도록 쉬었다.


작별 인사를 마친 뒤 결국 대표님 번호도 땄다!

대표님은 기회가 되면 백제의 인물에 대해서도 소설을 써달라고 하셨다. (지금 소설처럼 백제를 적으로 두지 말고)

조만간입니다. 곧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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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위치한 1층 카페로 모두 모여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왠지 다들 지친 모습이다.. ㅋㅋㅋㅋㅋ

오늘 저녁에는 몸과 마음의 회복 시간이 예정되어 있어 다행이다.



밤이 되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깊숙이, 깊숙이 어둠을 향해 올라간다.

딱 팔려가는 분위긴데 이거.

하차 장소에 도착한 뒤 산속의 체험지로 올라가는데 불이 켜지지 않아 있다. 의심은 더욱 증폭 됐다.

어쩐지 좋은 거 많이 보여주고 토실하게 멕이더니.


그러다 불이 촥 켜졌다.

눈앞에는 캠프파이어를 할만한 둥그런 공간이 보이고

조금 더 걸으니 멋들어지게 지어진 온실 느낌의 건물이 보인다. (여기도 마스터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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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가 이곳저곳 둘러봤다. 커다란 화목 난로에 귀여운 나무 의자, 조개껍데기.. 아 포근해.

중간에 위치한 나무 위로 지어진 작은 다락도 있는데 이것 참,,

모험가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돌소여의 모험 한 편 찍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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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희라쌤입니다. 아버지의 밤나무 숲을 이어받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 미소가 너무너무 아름다우시다. 작은 체구에도 엄청난 아우라가 풍긴다.


“오늘 우리는 얼댄싱 체험을 할 거예요!”


Earth dancing

맨발 걷기 (어싱) + 댄싱

~ 달밤 체조


희라쌤의 에너지 넘치는 소개를 들은 뒤 주변을 좀 둘러보았다.

맨발 체험 한다고 황토를 깔아 두신 건가. 아니면 원래 황토산인 건가.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여 곳곳이 황토 흙이던데 괜히 농산물, 임산물 때깔이 남다른 게 아니구나.


우리는 일단 안에 들어가 빙 둘러앉은 뒤 배부된 활동지를 작성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을 적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신문지와 몇몇 도구들을 활용해서 옷과 모자를 만들었다. 옆에 앉은 짝지와 의상을 교환하면 된다.

초등학교 이후로 이런 즐거운 짓을 한 적이 있었나?

하필 이번 체험의 짝지가 전직 보육교사님이다. 그 덕에 만드신 의상의 깔이 남다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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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인간 트리 완성. 하필 상의는 초록색, 하의는 밤색이야.


의상을 걸친 뒤에는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11월 말인 데다가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인간이라 이게 맞는 건가 계속 의심이 든다.

의심을 깨부수고 딱딱하게 굳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우리는 희라쌤의 채찍지휘에 따라 징용된 건설 노예처럼 둥근 황토 바닥을 걷다 뛰다 했다.

기차놀이도 했고, 앞사람 뒷사람을 두들기기도 했다. 서로의 동작을 따라 하며 웃기도 했다.

그러다 다 같이 둥글게 모였다. 맨발 놀이를 마무리할 순서인가 보다.


먼저, 한 사람이 ‘나는 너무 행복해~!’라고 외치면 이후 모두 함께 ‘왜~?’라고 물어주고

그 뒤에는 왜 행복한지에 대해 외치는 놀이? 였다.

나의 행복의 이유는? ‘부여 살이가 아직 다섯 밤이 남아서’라고 했던 것 같다.


과거, 인류가 한데 모여 춤추고 노래하던 종교적 제의 비슷한 걸 경험한 것 같다.

평소의 흥에 비해 말도 안 되게 격앙되어 정말 오랜만에 깔깔깔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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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실 안으로 들어가 족욕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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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반가운 마스터도 체험을 도와주러 오셔서 우리들 족욕통에 더운물을 바삐 채워주셨다.

“재밌었지?” 네, 지렸어요..


족욕을 하는 동안 우리는 눈을 감고 희라쌤의 싱잉볼 연주를 들었다.

왠지 가족 생각이 났다.

엄마, 미안.. 아들은 잘 놀아요.. 울지 않고 놀아요..


우리가 안에서 체험을 진행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마스터와 운영진이 화톳불을 피워두고 커다란 채를 이용해 싱싱한 밤을 굽고 있다.

온실을 정리하고 나와 모닥불에 둘러앉아 그 밤을 나눈다. 그리고 서로의 감흥을 발표하고 체험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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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충전이 완료됐다.

오늘 같이 즐거운 날 멤버들과 기쁨의 한 잔 나누지 않을 수 없어

이 날도 신나게 즐겼다는 후문,,,


아, 행복하다.


https://naver.me/xZj1ntBx

관심이 생긴다면 방문해 보시기를.

나처럼 몸도 마음도 뻣뻣한 선비들에게는 단언컨대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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