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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 Jan 30. 2021

[17일] ‘하지 않음’을 해보다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기

“하루 이틀 누워 계세요. 이럴 때 스트레칭하면 오히려 더 안 좋습니다.”

어제 책상 앞에 앉아있었는데 등에서 뻐근한 느낌이 올라왔다. 늘 달고 다니는 근육통이겠지, 담이 걸렸나 보다 하고 참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헙! 소리가 나며 주저앉았다. 근육통 치고는 느껴본 적 없는 매운 통증에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생활습관의 문제일 소지가 크다고 했다. 앉은 자세 때문에 일자목으로 여러 번 병원을 들락거렸던 때가 있는데 또 자세 때문이다. 특히 새해부터 더 부지런을 떤 결과가 병원행이었던 듯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아침 여섯 시. 아침을 해서 남편과 먹고 두 시간가량 책을 본다. 코로나라 재택근무가 잦아져 출퇴근 시간을 아낀 덕이다. 최근 일이 많아지면서 업무시간엔 자리에 집중하다 보니 회사에서보다 집에서 더 붙박이로 앉아있었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이 일만 마저 하고 일어나야지 하다가 올라오는 통증을 참은 게 화근이었다. 매일 새로운 일들을 생각하며 바빠진 몸에, 꾸준히 저녁시간에 두 시간가량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며 퇴근 후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시간들이 몸에 경고음을 보낸 것이다.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한다. 돌아눕기도 고통이 따르는 마당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독한 진통제와 주사를 맞고 일단 통증이 가시기를 찜질을 하며 기다린다. 핸드폰을 들어 각종 가십거리들을 보거나 강연을 듣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아프다. 돌아눕기 힘드니 천장만 보고 핸드폰을 오래 들고 있던 탓이다. 핸드폰도 내려 놓는다.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데 할 수 없으니 불안하다. 생각해보니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은 적이 얼마나 있나 싶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내 사전엔 별로 없었던 탓이다.

나는 게으름을 피해 다녔다. 부모님을 보며 부지런함을 자연스레 좇았다. 새벽 네시 반이면 일어나시는 부모님을 보며 여섯 시면 밥을 먹었고, 여덟 시까지 누워있으면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왜 안 일어나냐”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수험기간에는 내가 자는 동안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며 잠을 토해냈다. 주말이면 아침잠을 자면 하루가 밀릴 테니 외부요인을 만들었다. 조조할인 영화를 보며 다 보고 나와도 오전인 시간대를 좋아했다. 결혼 후, 밀린 잠을 주말에 쏟아내는 남편을 밖으로 불러내 운동을 갔다.

부지런함은 ‘쓸모’를 만들어내는 삶이다. 모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향해 달려 나간다. 내일을 향한 긍정과 기대가 연동한다. 부지런히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작은 것이라도 배우자는 나의 마음과 행동가짐은 내일을 더 다르게 살아보자는, 기대와 연결돼 있다. 의식적으로 부지런함을 추동하는 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의욕적인 새 날들을 꾸려가는 데 동력이 되지만, 누워있는 오늘에서야 몸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에게도 마찬가지다. 순간순간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기쁨을 느끼고 깨달은 바들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의미와 쓸모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걸 하나 놓치고 있었다. 내일의 더 나은 나를 위해 나를 너무 소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는  힘을 빼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오전 11시부터 여섯 시까지, 반강제적으로 누워만 있었다. 책을 읽을까 하다가 관두었다. 핸드폰도 무거워서 그냥 옆에 내려두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의 ‘아무것도 안 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몸도 쉬고 머리도 쉬자.’ 마치 멍 때리기 대회에 나간 것처럼 무념무상의 하루를 보내자. 그게 오늘의 ‘새로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무언가를 안 하는 간 오히려 꽤 많은 통제력을 필요로 한다. 핸드폰을 안 쓰기, 커피를 안 마시기처럼 작은 일상의 한 가지만 안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안 하기로 ‘결정’ 한 데 따른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크고 작은 투두 리스트(To-do list)를 만들며 살고 있지 않나 반문해본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안 하기 리스트 중 최고봉인 ‘모든 걸 아무것도 안 하기’를 연습 중이다. 비록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조금 헷갈리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고 살짝 걷거나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리하지 말자’가 오늘의 지침이었다. 나의 부지런한 일상을 위해서는 ‘멈추는’ 시기가 필요했다 생각한다. 반나절을 아무것도 안 했다. 생각이 고요히 흘러갔다. 많은 생각들도 일단 미뤘다. 생각을 불러내지 않았다. 흘러가는 생각들을 내버려 두고 붙잡고 곱씹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과 압박감을 쫓아내니 오히려 편해졌다.


‘오늘은 글도 내려놓자. 어차피 앉아있는 것도 아직은 힘들다.’ 그렇지만 밤이 다 되어 결국 ‘아무것도 안 한 것’에 대한 글은 남기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프로젝트는 반은 실패했고 반은 성공했다. 무언가 하루하루를 되돌아보는 습성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글 쓰는 부담을 내려놓자. 그래서 책상에 앉아 각 잡고 고민하던 시간을 내려놓고 핸드폰 메모장에 끄적거리는 걸로 대신한다. 그렇게 내 삶에도 ‘하자’에서 약간 힘을 빼 본다.

 ‘아무것도 하는 건’ 무쓸모가 아니다.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멈춰 서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끔 머릿속이 복잡해 문제가 안 풀리거나 할 때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번뜩하고 떠오를 때가 있었다. 잠, 휴식이 주는 선물이다.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도 누워서 천장의 파리만 보다가 GPS의 근간이 되는 좌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누워있는 것 또한 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나름의 과정이다.

내일의 몸이 나아진 나는 또 새로운 것들을 찾아 시도하고 있겠지. 그렇지만 이런 쉼이 있어야 또 한 걸음 나아가겠지. 문제의 해답이 풀리듯 내 몸과 마음도 조금 더 탄탄해질 것이다. 쉬는 건 게으름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나를 위한 부지런함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안하기’를 부지런히 해보는 하루를 만들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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