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게 되는 순간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로 북유럽 땅에 떨어졌다. 유심도, 첫 날 기숙사에 데이터도 없이 어떻게 찾아갈지도, 무거운 캐리어 2개와 배낭을 메고 어떻게 시내에서 움직일지까지도. 심지어는 노르웨이어도, 영어도 잘 못하는 채로, 캐리어 2개만 달랑 들고 비행기에 올라탄 것이다.
미지의 세계.
내게는 노르웨이 오슬로가 그랬다.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다시 0부터 삶을 시작하는 느낌. 어디로 도착할 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달려가는 느낌. 결말도 모르는 소설의 한 챕터를 넘기는 느낌. 그리고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가장 본능적으로 생겼던 최초의 감정은 설렘도, 두려움도, 떨림도 아닌,
생존의 욕구였다.
첫 날, 공항에 도착해서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서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게이트를 찾아다녔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직행 항공편도 없어서 헬싱키에서 환승하는 핀에어를 탔었고, 거의 한국에서 노르웨이까지 이동하는데에만 하루가 넘게 걸렸는데도 말이다. 혼자 여행 자체가 처음이어서 그랬는지, 옆자리에 앉았던 한 한국인 남자아이는 내 표정이 너무 긴장되어 보였다며, 그게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12:25 PM
그렇게 잔뜩 긴장한 채로 오슬로 가르데모옌 공항에 도착한 나. 알아본 대로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도저히 어떻게 타야 할 지 모르겠어서 결국 비싼 돈을 주고 이번만 북유럽 택시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기숙사 키를 받고 내가 지낼 곳으로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인데, 기숙사 키를 받기 위해서는 관련 교내 부서 영업시간인 15시 전까지 오슬로 대학교에 도착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택시밖에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14:30 PM
여기까지는 수월했다. 돈을 지불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으니. 하지만 그렇게 택시에서 내리니 진짜 고난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간신히 기숙사 키까지는 받았으나, 도저히 기숙사까지 내 캐리어를 혼자서 끌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감에 빠진 채로 멍하니 오슬로대학교 간판을 보며 서 있었다. 그나마 학교 공공 와이파이를 사용해 구글맵 지도를 볼 수 있었는데, 지도를 아무리 보아도 이 캐리어를 혼자서 끌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또 교통편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모른 채 기숙사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학교에서 기숙사까지는 메트로로 대략 4-5 정거장 정도. 짐이 없더라도 걸어가기엔 힘든 거리였다.
15:30 PM
그렇게 멍하니 서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시안 남자였고, 30대 정도로 보이는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길을 잃었느냐며, 어디로 가느냐고 친절하게 물어보는데 순간 울컥하고 감동해서 안되는 영어로 '나 오늘 오슬로 도착했는데, 기숙사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무거운 캐리어를 들어주더니 자신은 이 오슬로대학교의 계약직 교수라며, 본인도 중국에서 여기로 왔을 때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게 핸드폰 데이터를 어디서 사면 좋을지, 대중교통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등등 나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다. 게다가... 트램을 타고 내 기숙사 동 앞까지 짐을 들어다주었는데, 중간에 자신이 게이라며,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얼핏 했던 것이 아마도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해줬던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20:30 PM
그 날 저녁,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아직 침대에 이불도 없어서 들고 간 침낭과 롱패딩을 깔고 잠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떠 보니 대략 밤 9시 정도.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싶었는데 블라인드가 내려지지 않아, 우선 물이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숙사 바로 앞에 봐두었던 마트에 가보기로 했다. 밤이었지만, 8월의 노르웨이는 여름에 해가 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하늘을 신기해하며 호기롭게 레마(Rema)에 들어갔다.
그리곤 서둘러 물을 찾아보는데, 탄산수, 콜라, 과일 주스들 사이에서 물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면... 나는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던걸까. 아직 데이터를 구입하기도 전이라 구글링을 할 수도 없었고, 결국 점원에게 물어, 'where is the water?' 을 힘겹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점원의 손가락 끝에는 탄산수인지 물인지 잘 모르겠는 병들이 있었고, 나는 그냥 체념한 채 그 중 하나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Thank you'를 말하려고 하는데, 문득 너무 부끄럽고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목소리로 점원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서둘러 레마에서 빠져나온 나는 절망에 빠졌다. 노르웨이어로 감사합니다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영어까지도 이렇게 수줍게 말하는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내 소심한 성격 탓도 조금 했다.
첫 날, 솔직한 심정으로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나기에도 부족한, 나의 어처구니없는 미숙한 모습들에 지쳤었다. 그래서 우선 방에 들어와 에너지를 충전하기로 했다. 블라인드는 아직도 내리는 법을 몰랐고, 아까 마트에서 구입한 물을 마시려 페트병의 뚜껑을 돌렸다.
그때,
치이이이이이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솟아오르는 기포들.
내가 구매한 것은 물이 아니라, 사과 향이 나는 달콤한 탄산수였다. 그리고 짐가방도 풀지 않은 내 방 바닥은 어느새 사과향이 나는 탄산수의 향기로 범벅이 되었다.
2022년 8월 9일, 어느 날
"Where can I have water?"도 안나오던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 아기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곳,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여름엔 해가 지지 않고, 무엇을 먹고 살지도 모르는 이 땅에 나는 무얼 기대하고 온 걸까. 내 스스로도 몰랐다. 그렇게 한국에서 자취도 해보지 않은 24살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나의 삶에 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북유럽에서.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하나씩 느낄 수 있었던 그 날의 나의 투쟁들은, 사소한 듯 보여도 내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2024년 2월 4일.
나에게 노르웨이 오슬로 송 기숙사 32동 H0101호는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2022년 8월에 찍은 영상들로 당시에 엉성하게나마 만들어보았던 유튜브 영상입니다.
https://youtu.be/J-bIJCC9-yM?si=OMwVSkEi2-elJ1k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