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나잇
https://www.youtube.com/watch?v=i87fSub0-wg(노르웨이 교환학생 추석편 브이로그)
노르웨이에서 감사하게도 한국인 커뮤니티와 연이 닿았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윗층과 그 윗층까지 모두 내 또래의 한국인 교환학생들이었고, 그들이 또 모임에 나를 초대해준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낯선 노르웨이에 도착해서 문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워하던 나는,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8월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케아에 가서 이불보를 사고, 유심침을 사고, 또 수업 수강신청을 하거나 학생 비자를 준비하기 위해 경찰서에 가는 등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기억 뿐이다. 그렇게 바쁜 기억을 뒤로 하니 어느새 다가온 9월, 플랫메이트 줄리아와 크레페를 만들어먹었다.
갓 스무살이 되었다는 독일에서 온 줄리아는 너무 귀엽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속 주인공처럼 사랑스러운 성격에 등산과 코코아를 좋아한다. 유럽인이라고 해서 모두 파티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해 준 플랫메이트랄까. 아주 내향적이지만 활발하고, 얘기하다보면 공통점도 많고,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친구다. 줄리아에게는 그 다음 날 내가 연어장을 해주었었는데, 내 입맛에도 좀 짰었음에도 아주 맛있게 먹어주어서 고맙고 또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망의 코리안 나잇. 노르웨이에 온 한국인들이 추석을 맞이해서 다 함께 한식을 요리해먹기로 했다.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인원이 모일 예정이었기에 플랫이 아닌, 기숙사 근처 호수에서 다 같이 모였었다. 각자 주방 냄비, 혹은 도시락 통에 밥을 담아왔었는데, 몇 안되는 재료들로 나름 정성껏 만들어온 음식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잡채도 있었고, 계란말이, 배추전, 돼지고기집 볶음밥, 소떡소떡, 배추전 등 각자의 취향과 입맛대로 만들어 온 음식들 중에 겹치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까지 아주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노르웨이에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먹을 게 없다는 것이다. 감자, 그리고 빵 정도. 그리고 외식을 할 수 없는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종류에 맛까지 있는 한식에 대해 나는 더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어쩔 때 신라면 하나라도 끓여먹으면 그게 보약같다는 생각을 했다. 온 몸에 퍼지는 매콤하고 따뜻한 국물의 기운이 지친 몸을 치유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서로가 해 온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한 달 동안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한 가지, 극 내향인인 나는 적응하기 힘들었던, 그룹으로만 있을 때 나오는 외향인들의 텐션에 맞추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건 뭐, 단체생활을 할 때마다 경험하는 부분이라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하고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호수에서 인디밴드 노래도 듣고, 마시멜로를 구우며 늦은 시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 하루.
소속감이 있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나 혼자서도 강해지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남들에게 맞출 필요 없이 나의 에너지를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것도 중요함을 알고 기꺼이 도움을 받을 것.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고 진정성을 다한다면 내 인연들과 내 커뮤니티 안에서 최선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험이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금, 이때 만난 인연들 중 일부는 연락이 끊겼지만, 일부는 아직도 만나며 공감대를 넓혀나가고 있다.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의 사람들을 찾고, 나의 공간을 넓혀나가는 경험을 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