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있을 뿐이다
회사 명함에 박힌 로고는 효용이 있다.
로고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신의 직장'을 나타낸다면 구구절절 무슨 일을 얼마나 대단히 잘해왔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위상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걔 어디 다니잖아" 이 한 마디에는 그 사람이 좋은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공부도 잘했을 것이며, 똑똑하며, 돈도 많이 벌 것이라는 인식이 담겨있다.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명함을 건네주면 '응?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네' 하는 표정을 짓는다.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는 "얘 잘 나가"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일까 직장인이라면 내심 한 번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 한다. 비전만 일치한다면 연봉, 복지, 근무환경, 조직문화 등이 좋다는, 그래서 누구나 가고파 하는 회사를 다니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간혹 이런 기업에 다니며 자신의 가치를 가슴에 달린 배지의 브랜드 가치와 동일 시 하는 이들을 본다. 협력사 임직원들의 대접, 주변에서 인정해 주는 목소리에 익숙해져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지 못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업무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능력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제공하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이름값 좀 나가는 대행사를 부려 멋들어진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론칭하고, 시끌벅적한 마케팅을 한다. 이슈를 일으키는 광고를 만들고서 '내가 했다'라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더 능력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비단 신의 직장뿐 아니라 어느 회사를 다니든 회사 이름값으로 만들어 낸 성과는 본인의 가치와 명확히 분리해 판단해야 한다. 이것을 혼동하면 마치 고위 임원 옆에 선 수행비서가 자신의 보스에게 줄지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급이 올라간 줄 알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진짜 '몸 값'은 오롯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의미한다. 흔히들 연봉을 자신의 몸 값이라고 생각하는데 연봉과는 다른 개념이다. 회사는 당신의 실제 가치를 측정해 연봉을 주지 않는다. 비약해 표현하자면 다른 직원들한테 주는 만큼 주는 것뿐이다. 회사는 우수한 직원들을 영입하고 잡아두기 위해 급여 테이블을 세팅한다. 그리고 그 엑셀표에서 당신의 연차, 직급, 성과에 걸려있는 수식에 따라 연봉을 지급한다.
무슨 말인지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잠시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에 앉아있는 동료들을 살펴보자. 출근하는 것으로 오늘의 할 일을 마친 월급 루팡들도 있을 것이고, 팀 업무 절반을 혼자 처리하는 이들도 보일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보자. "너 연봉 얼마니?"
답변을 듣는 데 성공했다면 알겠지만 비슷한 연차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업무 성과와 능력이 천지차이일지라도 말이다. 인사 고과에 따라 약간의 차등이 있을 뿐이다. 만약 두 사람이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둬도 똑같을까? 진정한 '몸 값'이 드러날 것이다.
회사 로고를 떼어내고 만들 수 있는 몸 값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길어야 60세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년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은 회사로부터 훨씬 이른 40대 중후반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기대 수명이 100세라니, 여짓 살아온 만큼을 더 생존해야 하는 셈이다. 애석하게도 급여만으로는 은퇴 후 40~50년이나 될 여생 동안 먹고살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눈앞에 닥쳐 준비를 시작하는 것보다는 미리 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 아무 준비 없이 회사로부터 이제 그만 보자는 통보를 받으면 대부분은 회사가 나의 헌신을 알아주지 않았다며 배신감에 떨고, 삐지고, 술 마시고, 욕하고, 하소연한다. 감상에 빠져 잠시 쉬겠다며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생계가 문제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어 이곳저곳 알아보지만 맘에 들지 않거나 여의치가 않다. 부득이하게 알고 지내던 협력사 문을 두드리거나 허드레 일이라도 시작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품위도 낭만도 없다. 완전히 돈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상태로 회사를 벗어나면 눈보라를 맞게 된다. 바깥세상에는 선배라는 예우와 공로에 대한 인정이 없다. 그러니 어딜 가나 다녔던 회사 이름을 대며 한 때 잘 나갔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회사를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퇴직 후에도 여전히 회사 이름 빨에 기댄다. 단 한 번도 '회사'를 지우고 '나'로 설명해 본 적이 없어서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미래 비전이 없으니 과거 이야기 말고는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이들의 커리어는 끝이다. 과거 언젠가는 혁신적이었을 어느 피쳐폰처럼 말이다.
부디 그러지 말자는 이야기다. 오랜 기간 일해오며 쌓아온 시간이 아까우니 말이다. 퇴직 즉시 그동안의 시간이 리셋되지 않도록 회사 밖에서도 쓸모 있는 무기를 갖추자. 홀로 할 수 있거나 스스로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유명한 회사 로고가 박힌 명함. 그것은 그저 종이에 인쇄된 잉크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명문 구단에 소속된 기간 동안에는 경기에 한 번을 나서지 않아도 우승 반지를 낄 수 있지만 스스로 골을 만들지 못하고 기여할 수 없다면 유니폼을 입어봤다는 것으로 끝이다. 방출되는 순간 커리어는 끝난다. 어느 팀에서도 데리고 가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몸이 얼마나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진정한 '몸 값'이 결정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