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리는 항상 불만에 차 있다. 할 줄 모르거나 어려운 일을 맡을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선배들한테 하소연을 하고 불평을 쏟아 낸다.
박과장은 최대리를 커피숍으로 불러,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면 갈수록 흥미를 잃고 성장하지 못하게 될 거라며 조언을 해주며 관심 분야가 있다면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손을 내민다.
최대리는 한숨을 쉬고는 박과장의 눈을 보며 말한다. "과장님, 저는 일 같은 건 더 벌리고 싶지도 않고 배우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정시에 퇴근하고 싶어요"
최대리는 그 후로도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연말 인사이동에서 방출되다시피 다른 팀으로 발령 났다. 새로운 팀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겉돌았다.
최대리도 예전에는 인정받기 위해 의욕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모든 걸 내려놨다. 연봉과 보상에 대한 불만족,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평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터무니없는 의사 결정, 정치 놀음에 빠진 조직,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상사, 옛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꼰대 같은 팀장 등을 겪으며 의욕을 잃었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
많은 직장인들이 최대리와 비슷한 이유로 의욕을 상실한다. 일이 안 맞는다며, 이 회사는 틀려먹었다고 불평한다. 이런 원인들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우리가 회사에서 원하는 많은 것들은 대부분 남들이 결정하는 일이다. 일 년에 몇 번 마주치지도 않는 임원이 우리의 승진 여부를 결정한다. 인센티브를 좌우하는 평가 권한은 팀장에게 있다. 트렌디한 SNS 마케팅을 하고 싶어도 고리타분한 상사를 설득하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묵살되고 엉뚱한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마치 법정에 선 원고가 판사의 입만 바라보듯 우리도 상사의 결정에 따라 회사생활이 좌우된다. 법원에서 그렇듯 회사에서도 '남'이 내린 결정과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주도적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다. 타인의 가치를 따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현타가 마동석처럼 성큼성큼 다가와 뺨따귀를 날린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회사 생활에서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려면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회사에서 맡아야 하는 업무를 스스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꼭 그래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의미>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이유와 의미를 알고 일하는 사람들은 동력을 잃지 않는다. 특히 그 이유와 의미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일 때 강한 효과를 거둔다. 이들은 상사한테 인정받기 위해서나, KPI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를 바탕으로 이유를 만든다. 그래야 타인에 의해 일하는 즐거움이 좌우되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일을 할수록 꿈에 다가선다는 견고한 명분은 남들의 결정과 평가와 잔소리 따위에 방해받지 않는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을 어려워한다. 어려울 땐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도움이 된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본 '이루고 싶은 것'이나 '이렇게 살고 싶다'는 밑그림에서 시작하면 된다. 삶을 통틀어 꿈꿔온 'End-picture'를 그려보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추적해 회사 일과 연결 지으면 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End-picture가 '평생 놀고먹을 돈을 마련해 50세에 은퇴'하는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이미 부를 축적해 둔 게 아니라면 급여 수입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사업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를 것이다. 다음은 어떤 사업을 언제 시작할지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생각을 멈춘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고 막연하기 때문이다. 당장 정하기 어려워도 괜찮다. 한 걸음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일상으로 눈을 돌려 회사에서 사업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경험을 찾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은 도처에 널려 있다. 회사라는 곳 자체가 누군가 사업을 시작해 일궈낸 노하우와 경험의 집약체다.
가령 막내에게 떠넘기던 팀의 예산 담당자를 자처하면 회사가 예산을 어떤 식으로 분배하는지 알 수 있다. 세무팀, 자금팀과 적극적으로 컨택하며 세금 처리 노하우를 파악할 수도 있다. 법무팀에 일임하던 계약서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수정되는지 이유를 알면, 향후 사업을 할 때 사기 당하지 않는 계약서 작성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다. 인사팀에서 보내온 연봉 협상 메일에 무심하게 동의 버튼을 클릭하기 전에 어떤 논리로 인상률을 책정했는지 물어보고, 그들이 소통하는 방법을 관심 있게 보면 향후 직원들을 관리할 때 참고할 수 있다.
자잘한 일 하나하나에도 사업을 위한 노하우가 숨어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위한 사업을 목표로 한 순간부터 모두가 기피하거나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던 일에서 조차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나면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부서로 이동을 하거나, 태스크에 자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를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을 생각 중이라면 관련 부서로 이동해 일을 배울 수 있다. 신규 사업을 기획해 회사에서 작은 비즈니스를 시작해 볼 수도 있다. 심지어 회사의 인프라를 활용해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고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외부 회사에 대한 투자나 파트너십을 추진하는 태스크에 합류하면 객관적인 시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사업체를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과거에 폐기된 기획을 살펴보면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을 판단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이렇게 개인적인 목표를 업무와 연결 짓는 순간 우리는 소극적인 회사원에서 적극적인 사업가로 변신한다. 모든 일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을 찾아낼 수 있다.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몰입은 남들이 해내기 어려운 결과물까지 만들어 낸다. 개인적인 성장이 회사에 기여하는 win-win 구조다. 혹시라도 회사를 이용한다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과정뿐 아니라 결과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만든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신입생들의 목표설정 여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던 학생들은 단 3%에 불과했다. 이들은 졸업 후 목표가 없던 84%의 학생들보다 10배나 많은 연봉을 벌었다.
이제 우리는 승진에 목을 맬 필요도 상사에게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모든 일에서 의미를 느끼고 그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것이 목표가 갖는 힘이다.
큰 그림은 잘게 쪼개야
목표를 설정하고 일과 연관지었다면 이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실제로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조금 더 남아있다. 중간 이정표를 최대한 많이 세워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을 맛보며 실행의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다.
최근 자영업을 하는 한 30대 초반 청년의 목표를 찾는 일을 컨설팅해 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이 청년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고 영향력을 갖는 게 자신의 end-picture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소 막연했던 이 그림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정표들을 세웠다. 나아가 욕구를 추적해 숨겨진 목표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우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인지도, 전문성, 성과, 철학 4가지 분야로 설정했다. 유명하고 인정받으며 이뤄낸게 있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지도는 이 청년이 몸담고 있는 업계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의 SNS 팔로워 수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현재 팔로워 수를 기반으로 콘텐츠 발행 계획과 브랜드 전략을 세웠다. 3년 계획을 세워 이를 다시 1년으로 쪼개고 월단위로 나눠 눈에 보이는 성취를 느끼며 나아가기로 했다.
전문성 확보는 대외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쌓고 확장하기로 했다. 유명 대기업이 추진 중인 문화 사업 프로젝트에 강연 일정을 잡았다. 이를 시작으로 올해 중 법인을 설립해 지속할 수 있는 강연 시스템을 만들고 미디어와 유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이렇게 하면 대외 기관이나 업계의 생태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전문성을 구축할 수 있다.
성과 측면에서는 연도별 실행 계획과 재무 계획을 수립해 현재 운영 중인 1개 매장을 향후 5년 동안 10개로 확장하기로 했다.
'철학'을 이정표 중 하나로 설정한 이유는, 업계를 리딩하는 영향력을 갖추려면 단순히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넘어서는 정체성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서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는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컨설팅을 해나가기로 했다.
이 청년과는 이제 목표를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4가지 이정표를 더욱 세분화해 이달에 해야 할 것, 올해 이뤄야 할 것, 내년까지 해야 할 것 등으로 쪼갤 것이다. 각 이정표에 도달할 때마다 맛보게 될 성취감은 공중급유를 받는 전투기처럼 멈추지 않고 비행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4가지 이정표는 초반에는 각 분야에서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고 나면 시너지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강연으로 유명해지면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 것이고, 팔로워가 늘면 방문객이 늘어나 매출이 오르고 매장 확대 속도가 탄력을 받는다. 대중이 공감하는 철학을 구축해 브랜드에 반영하면 열성 팬층이 생겨나고 인지도와 전문성 성과 모든 분야에서 달성 속도가 빨라진다.
이제 이 청년은 지금까지는 바쁘고 피곤해도 해야만 했던 '일'이었던 인스타그램 게시물 발행을 즐겁게 할 수 있게 됐다. 콘텐츠마다 늘어나는 팔로워 수를 보며, 이번 주, 이번 달, 올해 목표를 달성해 가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 강의안을 즐겁게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작은 일 하나하나가 꿈을 향해 가는 눈에 보이는 척도가 된 것이다.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유명해진다는 표면적인 End-picture 속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찾아낸 것이었다. 우리는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보한 영향력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욕구를 찾아냈다.
우리는 실행 계획에 곧바로 이 욕구를 포함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 수강생 일부 비중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할당하고 이들에게는 수강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욕구에서 비롯한 목표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강력한 행동의 이유를 만들어 낸다. 실제로 청년은 이 대목에서 당장 강의안을 만들어야겠다며 밤 11시에 벌떡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정리를 해보자.
회사 일이 재미없는 건 개인적인 목표가 없어서다. 우리는 일 년에 약 230일을 회사에 출근한다. 하루에 8시간씩 일 년간 1,840 시간을 일한다. 1만 시간을 쏟아부어 정진하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따르면 우리는 매 5년 반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퇴근 후에 자기 계발을 한다며 회사에 있는 시간을 무가치하게 보내는 건, 마치 방과 후 1시간을 공부하는 학원에서 졸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8시간 내리 잠만 자는 것과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느끼며 일에 집중하는 이와, 밤마다 출근하기 싫어 의미 없는 유튜브 쇼츠 영상으로 도피해 새벽에 잠들고 회사에선 녹초가 되어 멍한 상태로 커피 머신을 왔다 갔다 하는 이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직장인에게 가장 좋은 기회와 시간은 사무실에 있다.
목표라는 거창한 표현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목표는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다. 살다 보면 가치관이 변화하고 원하는 것도 달라진다. 현시점에 앞으로 인생을 확정해 단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목표가 있느냐다.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능력은 차후에 어떤 식으로든 제 몫을 해낸다. 지금은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 된다.
만약 end-picture를 그려본 적이 없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가, 종이와 펜을 꺼내놓고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닿기 위해 회사에서 배우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일 목록을 작성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