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싸이트 Aug 26. 2023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겠습니다

근데 그게 얼마에요?

최근 들어 유명 축구 선수들이 세계 최고라는 '꿈의 리그'를 떠나 몇 수 아래 사우디 축구 리그로 거액의 연봉을 받고 잇따라 넘어가고 있다.


화제를 낳으며 신호탄을 쏜 호날두는 영국에서 300억 원 연봉을 받다 사우디 리그로 옮겨 무려 9배인 2,700억 원을 받기로 했다. 입을 다물지 못한 네이마르, 벤제마 등 레전드 선수들도 주섬주섬 짐을 싸 사우디로 향했다.


그에 반해 메시는 무려 호날두의 두 배인 5,700억 원 연봉 제안을 거절했다. 앞날이 창창한 신성 음바페는 '묻고 더블로 가' 수준인 1조 원을 입꼬리를 올리며 거절했다. 손흥민도 물망에 올랐으나 돈보다 좋아하는 리그에서 뛰는 게 중허다며 칼차단을 박았다.


사람들은 돈을 좇아 사우디로 간 선수들을 폄하했다. 반대로 상위 리그에서 명예를 지키기로 한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열광했다. 목소리를 높인 이들은 대부분 상위 리그인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밥벌이를 하거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전 현직 감독, 선수, 언론인, 칼럼니스트, 유튜버 등 관계자들이었다. 돈으로 톱스타들을 끌어 모은 리그에 인기를 빼앗기면 곤란해지는 사람들이다.


본인의 인생을 결정하는 당사자 입장에선 어떨까? 10년 동안 벌 돈을 1년 만에 준다니 고민이 될 법도 하겠다. 게다가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나이에 받는 제안이니 더욱 솔깃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50대 중후반 나이에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데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에서 연봉 10배를 쳐준다면 오퍼를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남겠는가? 당사자에게 선택은 현실이다.


퇴임을 앞두지 않은 직장인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10배는커녕 고작 0.2배만 연봉을 더 준다 해도 귀가 솔깃해진다. 일회성 보너스가 아닌 앞으로 매년 받게 될 연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앞선 예시와 달리 뛰고 있는 리그보다 상위 리그로 진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거기 가서 얼마 받아봐야 다 똑같아"라거나, "돈이 전부는 아니야. 다시 생각해 봐"라는 말을 한 스푼씩 얹는다. 


개인적으로도 이탈리아 리그쯤 됐을 것 같은 첫 직장에 이별을 통보하고 스페인 리그쯤 되는 직장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임원으로부터 "얼마 준다디?"라는 핀잔을 받았다. 다른 임원으로부터는 "돈 많이 벌어라 새끼야"라는 응원을 들었다. 이어 영국 리그쯤 될 것 같은 곳으로 직무를 바꿔 옮길 때는 임원으로부터 "당신 거기 가면 경력 단절 돼"라는 축사를 들었다. 많이들 격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고 후회는 없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서 '돈'을 제외할 수 있을까? 이미 '연봉은 거들뿐' 수준의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과, 돈이 아닌 다른 것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직장인들은 그렇지 않다. 근로소득은 생계 수단이자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종잣돈이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돈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다면 단언컨대 그 레이스에는 끝이 없다.


어느 리그로 옮기든 연봉 인상의 달콤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면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동료들이 반드시 있다. '저 친구는 나보다 일도 덜하는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은 빠르게 자라나 곧 뇌를 지배한다.


빈곤은 상대적이다. 


5천만 원을 벌던 회사를 떠나 1억 원을 벌게 되어도 그곳에서 만난 후배가 2억 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한 없이 가난해지고 불만족스러워진다. 2억 원을 벌어도 주식으로 10억 원을 벌었다는 사람 앞에서 무너진다. 10억 원을 벌어도 태어날 때 부터 부자인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 세상을 저주하게 된다.


리그가 바뀜에 따라 비교의 대상은 끝없이 생겨난다. 그래서 옆 동료와 우열을 따지거나 '저 회사는 더 많이 준다더라'와 같이 생각해서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연봉을 거의 10배로 부풀리며 지구 역사를 새로 쓴 호날두 조차 평생 이기고 싶던 라이벌인 메시가 자신의 두 배를 제안받았다는 뉴스를 봤을 때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욕이 입술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을 것이다.


남과 비교를 하는 삶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만의 주관적인 기준과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막연한 목표는 '무엇을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얼마를 번다'로 바꿔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 시내에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사서 아이와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고, 배우자와 아침마다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새소리를 듣는 삶을 살고 싶다'와 같은 이유로 '50억 원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정하는 식이다. 그래서 투자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향후 3년간 1억 원을 모을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해야겠다와 같은 행동의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목적이 없다면 50억 원짜리 단독주택에 이사오고나서 눈에 들어온 100억 원짜리 옆집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사라질 것이다. 그 옆집은 200억 원이라는 사실과 알고나면 빈민으로 전락한다.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를 알아야 결승선을 통과해 주변 사람들과 세리머니도 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목적지가 없으면 자신에게 필요한 금액을 산정할 수 없다. 벌면 벌수록 몸이 망가져 더 뛸 수 없을 때까지 끝 없이 달리게 된다. 그제야 주저앉아 망가진 몸에 신음하며 자신의 꿈이 뭐였는지를 찾아 헤맨다. 이미 지나쳤다는 사실을 삶의 끝자락에서 깨우치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조리 의미 없어지고 공허함에 시달리게 된다. 내 삶의 이유는 남에게서 찾지 말고 스스로에게서 찾자.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