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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싸이트 Aug 12. 2023

회사, 그만 다니고 싶나요

이대리는 점심시간이 되자 화장실을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팀원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팀원들은 전혀 즐겁지 않으면서, 억지로 쾌활한척하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시답잖은 대화를 한다. 이대리는 이런 점심시간이 싫다. 당충전은 커녕 기가 빨린다.


이대리는 혼자 있는 쪽을 선택한다. 점심시간마다 아무도 마주칠 일 없고 누구도 말 걸지 않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귓구멍에 이어 버드를 쑤셔 넣고 늘 고정좌석처럼 이용하는 옥상 벤치에 앉아 도심을 내려다본다. 무언가를 본다기엔 눈이 향해있는 방향의 공간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주변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회사 앞 사거리 횡단보도로 쏟아져 나온다. 이대리는 마치 하루 한 시간 감방에서 벗어나 운동장을 거닐며 볕을 쬐이는 죄수들 같다고 생각한다.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본 피사체들은 너무도 작다. 그 안에 들어있는 삶 역시도 하찮을 것 같다. 아침이니 출근하고 일하고 밥을 먹고 어두워지니 잠을 자는 삶처럼 말이다. 이대리의 입가에 시니컬한 웃음이 고이며 옅은 팔자 주름에 굴곡을 만들어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길이 인파로 가득 들어찬다. 이대리는 문득 직장인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궁금함이 밀려온다. '저 사람들은 왜 회사를 다닐까?', '돈을 벌기 위해서?', '달리 할 게 없어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답변을 해줄 이 없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문득 길 건너 건물 1층 커피숍이 눈에 들어온다. 이대리가 신입사원 때 생긴 곳이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걸어 다닐 때는 잘 보이지 않던 테라스를 덮고 있는 차양에 시선이 머문다. 예전에는 또렷한 색감이었는데 지금은 멀리서 봐도 물이 빠져 보인다. 미세먼지와 빗물이 긴 시간 교차하며 만들어 낸 검 자국이 마치 세월에 찌든 자신의 모습 같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이 삶에 스며드니 모든 게 당연해져 버렸다. 익숙함 속에서 문제의식이 생길 리 없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가 본다.


언제부턴가 이대리가 하는 일은 모조리 비효율적이고 중요치 않은 일들이었다.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할 뿐이다.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지만 굳이 나서지 않는다. 그래봤자 인정을 해주지도 않고 일만 늘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월급은 똑같다.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사원 시절부터 대리 초반까지는 참 열심히 일했다. 밤잠을 설치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나름 자부심이 느껴질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이의 몫이었다.


그 시절 이대리는 스스로를 가습기 진동자에 비유하곤 했다. 임원들은 버튼을 누른 김팀장 덕에, 부산스럽게 물을 퍼담는 오버 액션을 보인 박 과장 덕에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했다. 시스템 안에서 쉬지 않고 부르르 떨며 물을 기화시키는 진동자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공정하지 않은 평가 방식에 서운함과 허탈함, 마지막엔 분노가 밀려왔다. 친분 정도와 '광팔이'에 의해 고과가 매겨지는 회사에서 노력해야 할 동력을 잃었다.


다른 시도도 해봤다. 오너십을 갖기 위해 새로운 일도 제안해 봤다. 번번이 묵살당했다. 상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새로운 일보다는 루틴한 일을 실수 없이 해내길 바랐다. 몇 차례 경험을 통해 확신에 이르고 나니 일하는 재미를 완전히 잃었다.


그 후로는 회사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언제부터 일을 재미로 했냐며 자조했고 일요일 밤이 되면 주말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밀려왔다. 한 주가 또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수 없이 반복했지만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은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이대리는 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회사 따위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 계획도, 퇴사하면 무얼 할지도 아무런 대안이 없다. 다른 회사로 이직해 봐야 어차피 비슷한 생활을 다른 곳에서 할 뿐이라 여겼고, 익숙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 신입사원처럼 생활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라는 전제를 달아 놓은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막연해 위안이 되지 않는다. '주식이나 코인이 떡상하면'이라고 조건 값을 바꿔본다. 스마트폰을 켜 차트를 보며 상상회로에 전력을 공급해 본다. 아직 퇴사를 꿈꾸기엔 너무 멀다. 이럴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투자로 승부를 봐야 하나 싶다. 시드머니 규모가 작아 아쉽다. 이제는 정말 연봉을 많이 준다는 회사로 옮기거나 N잡러가 돼야 하나 싶다.


답도 없는 잡생각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가 싫다는 생각이 몸으로 전이돼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왜 회사에 가기 싫을까.

왜 하고 있는 일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질까.

왜 항상 회사를 향해 푸념하게 될까.

왜 스스로 가치를 높이지 않고 고연봉을 받는 누군가를 부러워할까.


우리는 왜 일을 하고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인간관계는 어떻게 쌓아가야 할까.

우리는 꿈꾸는 삶과 일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


대기업 몇 군데를 십여 년 다니며 직접 경험하고, 때로는 목격하고, 종종 느끼고, 자주 생각해 온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합니다. 마치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는 아웃사이더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깨달은 인사이트가 저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거나 혹은 제가 지나온 길을 걸으며 고민하고 있을 분들께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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