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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문꾼 Jan 29. 2022

호구의 품격 1

 연락이 안 되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구질구질하니까. 11시가 넘었다. 18분이 넘었는데, 카톡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J에게 답장이 와도 문제긴 하다. 자신이 없었다. 그녀에겐 대화를 이어갈 만한 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J는 ‘ㅋ’으로 양념을 쳐대며, 귀찮음의 냄새를 가렸다. 

    

‘맛있겠네ㅋㅋㅋㅋㅋㅋ나도 먹고싶닼ㅋㅋ’


‘ㅋㅋㅋㅋ재밌겠닼ㅋㅋㅋㅋㅋ’     


 난 심폐소생을 해가며 겨우겨우 대화를 살려갔다. 그건 아쉬운 쪽이 감당해야 할 문제였으니까. 남들이 날 보면, 넌 시발 눈치도 없냐고 혀를 끌끌 차겠지만, 오프라인에서 우리 사이를 보면 카톡 답장 시간 따위가 대수겠냐는 것이다.      


 J와 밥을 먹던 날을 떠올렸다. J는 피자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 콜라를 마셨다. 그것도 내가 입을 댄 빨대가 버젓이 꽂혀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그 날 우리는 좀비 영화를 봤는데, J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내 팔을 움켜쥐었다. 생전 그렇게 낭만적인 좀비 영화는 처음이었다. 내 심장소리가 J에게 들렸다면, 결코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학부 술자리에서 편의점에 담배 좀 사러 간댔더니, 같이 나와 팔짱까지 끼어가며 메로나까지 먹어놓고, 지금 이렇게 내 답장에 소식이 없다. 내 아쉬움의 원천을 말하자면, 희망이었다. J와 잘 될 거라는 희망. 


 그러나 아쉬움에도 정도가 있는 법, 난 결국 남자랑 왜 이 시간까지 둘이 있는 거냐 물었다. 시간 간격을 둔 1이 이제 2개다. 바로 답장이 왔다.     


‘아니 얘가 무슨 남자야ㅋㅋㅋ얘 지금 존나 진지해서 갈 수가 없어ㅋㅋㅋ개웃겨ㅋㅋㅋㅋㅋ'     


 그녀의 쿨내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당연히 집엔 언제 가냐고 물어보진 못했다.     


 새벽 1시 30분이 되서야 J로부터 집에 간다는 답장을 받았다.     


 다음 날, 기태와 창수를 만나 어제 일에 대해 푸념을 뱉었다. 물론 그들의 조언이 하등 쓸모가 없을 거란 걸 알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감자탕과 낮술과 나의 비극이 합쳐지니, 오늘 경제학 강의는 재끼기로 했다. 


 창수가 초장부터 쏘아붙인다.     


“너 시발 호구새끼냐.”     


“응. 호구맞아.”     


기태가 이어갔다.     


“야.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     


 “후.. 답답아. 예의니 믿음이니 잘잘못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잖냐. 꼭 연애를 글로 배운 놈들이나 이래라 저래라 하더라.”   


 그래도 내 편이니, 참기로 했다.     


 창수가 뼈를 뜯으며 무심히 말한다.


“그럼 너도 똑같이 해. 여자들이 또 나쁜 남자에 환장하잖아.”     


 쉽게 툭 내뱉는 것들은 분명 EQ가 부족한 녀석들이다. 사랑은 가슴이 시키지만, 어느정도 머리가 도와줘야 한다. 난 빈정거렸다.     


“철딱서니 없는놈아. 니 얼굴이 나쁜 놈이다.”     


 창수는 발끈했다. 그가 도발이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야. 너 무슨 생각하는거냐. 무슨 되지도 않는 밀당 같은 거 생각하는 거 아니지?”     


창수의 부정의문문이 똘똘해 보여 나도 되물었다.     


“그럼?”     


“내가 보기에 어차피 이 판은 끝났어. 너 걔랑 못사겨.”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 짜증나 답변 대신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왜? 내말이 틀려? 너 운 좋아서 걔랑 사겨도 계속 양보해야 할걸?”     


 자작으로 다시 잔을 비웠다.     


 “아 내가 말을 잘못했네. 복종이지 복종. 양보는 동등할 때 베푸는 거고. 응 넌 그냥 복종.”     


 창수는 낄낄거리며 내 잔에 지 잔을 부딪혔다.      


 하긴 누가 연락을 많이 하느냬 마느냬, J가 남사친이라도 만나는 날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느냬 마느냬 상처받을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창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까일 때 까이더라도 임팩트나 남기자.”     


난 고개를 들고 창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근데, 돈이 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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