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바둑 경기가 끝나면, 기사들은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둔다. 이를 ‘복기’라 부르는데, 비평을 위한 일종의 피드백이다. 바둑에서 복기는 필수다. 현실에서도 잘 써먹었다면 유익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피드백은 지루하며, 귀찮고, 때로는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것들은 행위 자체만으로 성취감, 우월감 따위를 던져주는데, 이런 정신적 포만감은 나를 안심시킨다. 난 대단한 일을 한 듯 착각하고, 그것만으로 마땅하기에 자연스레 피드백은 생략된다. 그리고 나는 실패했다.
공부는 행위 자체만으로 위안을 준다. 고3 시절, 나는 상전이었다. 엄마에게 짜증을 배설했고, 가족행사는 다 열외였다. ‘공부’가 이를 다 허락해주었다. 피드백 없이 앞만 보았더니, 내 예민함은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주었다. 그렇다고 결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요즘 나는 책을 읽는다. 독서라는 취향은 행위 자체만으로도 과시하기에 참 편리하다. 희한하게 책을 덮고 나면,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 경우가 꽤 있다. 피드백이 없다면 내가 주워온 지식은 휘발된다.
하지만, 피드백은 어렵다. 하루를 되돌아보는 일은 귀찮다. 진도 빼기 바쁘고 다 아는 내용 같기에 복습은 지루하다. 다이어트를 위해 런닝머신에 오르긴 쉽지만, 식단을 되돌아보는 일은 불편하다. 머리가 아는 것과 몸이 체득하는 영역은 다르다 결국 피드백은 의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기부문화에 한 획을 그은 책 「냉철한 이타주의자」는 피드백에 대한 감각을 일러준다.
저자는 ‘이타주의’를 피드백한다. ‘기부’는 좋은 것 아닌가? 이기적인 세상 속, 남들이 하지 않는 그 어려운 일을 했는데 그걸 검열하다니. 그는 그러면 안 될 것을 분해한다. ‘기부’는 행위 자체만으로 신성하고, 그래야 마땅하기에 어느 누구도 되새기지 않았다. 윌리엄은 의문을 제기한다.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자선단체 기부는 대개 적절한 피드백 경로가 없다. 부실기업에 투자하면 사업실패에 따른 비용 손실이라도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런데 부실 자선단체에 투자하면 실패 여부를 알 길이 없다.(p.25) 그는 선의와 열정에만 이끌려, 무턱대고 실천하는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함을 짚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타주의를 경솔하게 했을까. ‘도덕적 허가 moral licensing’ 효과가 있다. 착한 일을 한번 하고 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p.201) 여기에 윤리적 소비라는 당위가 얹혀진다면, 시스템은 깊숙이 가려진다.
윤리적 소비는 노동착취가 없는 작업장의 물건을 구입해 주는 소비운동이다. 공정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상품을 웃돈주고 구입하고, 노동착취 공장에 대해 보이콧한다. 정말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빈부격차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절대 빈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때문인데, 가난한 나라에서는 오히려 노동착취 공장이 좋은 일자리가 된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 공장이 현지 하청업체에 비해 임금이 높은 게 현실이다. (p.185)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 같은 고용 증대 방식(노동착취공장)이 전 세계 극빈층에게는 반가운 희소식이라는 게 압도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노동 집약적 제조업이 저임금 농업 위주 경제 사회가 더 부유한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p.184) 저자는 애초에 착취공장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 절대빈곤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게 더 올바른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무분별한 선행과, 감정에 치우친 행위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는 여러 목차에 걸쳐 피드백한다.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하는 게 과연 생산국의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익이 가는지,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서 행하는 절약이 온실가스 감축에 과연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요목조목 따져본다.
그가 들려주는 여러 사례들은 우리에게 피드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남아프리카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막대한 후원을 받아 공급된 “플레이 펌프”가 실제로 얼마나 무용지물에 불과했는지 그의 복기는 차갑다. 그럴듯한 기부였지만, 어떻게 헛돈이 쓰였는지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케냐의 학생들의 잦은 결석에 대한 해결책은 교재를 지원하거나, 더 많은 교사를 늘린 것이 아닌, 구충제 보급이었다.
사실, 누군가를 도우려면, 그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세상이 아름답고, 아직 살만한 이유는 이런 사람들 덕분이다. 이 진심을 지속 가능하게 잘 끌고 가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그전략중 하나가 피드백인데,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것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진정 어린 마음에 효율과 가성비를 고민한다 해서 선행의 본질이 흐려지진 않는다. 우리가 행위자체에 만족해, 피드백을 생략시킨다면 실속은 허울에 가려진체 점점 수면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윌리엄 맥어스킬의『냉정한 이타주의자』(부키, 2017)는 이것을 성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