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어린 시절, 친척 집을 전전하던 시절
내가 태어난 지 네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한 가지 장면만은 또렷하다.
그때 우리 곁에는 엄마가 있었다.
나와 여동생, 그리고 엄마.
하지만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두고 떠났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부모의 얼굴도, 목소리도, 따뜻한 체온조차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할아버지 손에 맡겨진 나는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떠돌며 자랐다.
늘 낯설고 불안한 나날이었다.
친척집은 분명 따뜻했지만, 엄마의 품은 아니었다.
그들의 온기는 진심이었을 테지만, 그리움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계속해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녔다.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남의 아이까지 돌보기 어렵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내가 꽉 붙잡았던 것은 나보다 더 작고 연약한 여동생의 작은 손이었다.
우리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을 잡고 있지 않으면 서로에게서 완전히 잊힐 것만 같았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였고, 그 존재는 생명줄 같았다.
서로가 울타리이자 숨구멍이었다.
밤이면 여동생과 나란히 누워 소리 죽여 울곤 했다.
여동생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흐느꼈고, 나는 그 눈물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내 마음도 부서질 듯 아팠지만 울 수 없었다.
언니인 내가 울음 보이면 여동생이 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삼키고 대신 조용히 토닥이며 ‘엄마 흉내’를 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빨리 눈치를 챘다.
때로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눈치를 피하려 애썼다.
존재를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자주 혼이 났다.
“왜 이리 말 안 듣니”라는 잔소리가 익숙했다.
사랑을 받기보다 견뎌야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부모 손을 잡고 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평범한 모습이 나는 너무 부러웠고, 또 낯설었다.
울음을 터뜨려도 품에 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는 게 먼 이야기 같았다.
‘엄마’라는 단어가 낯설면서도 간절했다.
내게 부모란 태어나면서부터 있어야 할 당연한 울타리였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내게 없었다.
때때로 친척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오래 가지 않았다.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나는 자라야 했다.
그럼에도 내 곁에는 여동생이 있었다.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였지만, 그 손이 내게 숨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였고, 서로의 빛이었다.
작은 손을 꼭 잡고 어두운 터널을 함께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