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보금자리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작은 집 한 채가 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오래된 동네, 마당이 있고 지붕에는 이끼가 내려앉은 집.
창틀은 낡아 문을 열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났고, 겨울이면 바람이 스며들어 온몸이 시렸다.
그 집은 나와 동생 공동명의였다.
마음대로 고칠 수도, 팔 수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한 뒤, 아이가 생기고 나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그 집은 유일한 시작점이었다.
신혼이라기엔 너무 조용했고,
신혼이라기엔 매일이 계산기와 함께였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왔고,
나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하루 대부분을 그 집 안에서 보냈다.
아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자
집은 더 이상 숨 쉴 틈이 없었다.
겨울이면 보일러를 하루에 몇 시간씩만 돌렸고,
장판은 뜯어져 여기저기 테이프를 붙여놨다.
그마저도 아이가 미끄러질까 불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이사 가는 건 무리야. 수리해서 살자.”
그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적어도 이 집이 좀 더 아이들에게 안전해진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집이 우리 명의가 아닌 ‘공동명의’였기에
나는 동생을 여러 번 설득해야 했다.
몇 번은 망설이고, 몇 번은 울기도 했다.
결국 동생도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 아이들과 마당에서 점심을 먹고,
공사 소음에 젖은 낮잠 속에서
나는 왠지 모르게 희망이라는 걸 처음 맛봤다.
그렇게 집이 바뀌었다.
낡았던 창틀은 견고해졌고,
거실 바닥엔 따뜻한 원목 느낌의 마루가 깔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거실이 생겼다.
나는 아이 셋을 소파에 앉혀놓고, 새로 산 작은 화분 옆에서
‘우리 집 같다’는 말을 처음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편은 말했다.
“빚은 내가 갚을게.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하면 돼.”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는 그저 아이들 잘 돌보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는 게 내 몫이라 믿었다.
아침이면 분주하게 아이들 아침을 준비를 하려 하며
세 아이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에 금세 깨곤 한다. 아이들과 분주한 아침을 움직일때는 다소 힘이들긴 했다.
그래도 좋았다.
국을 데우고 밥을 퍼 담을 때,
잠깐의 틈에서 바라보는 정리된 거실과 햇살 가득한 창문.
그건 분명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했던 장면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진 건 없지만 모든 걸 가진 사람처럼 살았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소리 내어 웃고, 남편이 고단한 얼굴로도 빈 그릇을 내밀어줄 때,
나는 마음 깊숙이 생각했다.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물려받은 낡은 집,
그 안에서 빚을 짊어지고 시작된 우리 가족의 이야기.
그 집이 수리되며 나의 마음도, 나의 일상도 조용히 바뀌어갔다.
지금도 빚은 남아 있고, 삶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그날의 평온은,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였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거실은
나의 따스한 보금자리였다.